대통령 개헌안 폐기...개헌불씨는 ‘활활’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18-05-24 15: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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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집권여당이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 발의 개헌안 표결을 강행했지만, 역시 예상했던 대로 118석에 불과한 민주당의 단독 표결 처리 시도는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그런데 오히려 이것이 개헌의 불씨가 되어 국회차원의 개헌 논의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24일 오전 본회의를 열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26일 발의한 헌법개정(개헌)안을 유일한 안건으로 상정해 표결에 부쳤지만, 투표 참여 인원 114명으로 표결 정족수(193명 이상)를 채우지 못해 '투표 불성립'이 선언됐다. 그런데 이 같은 결과는 이미 예견됐던 것으로 새삼스러울 게 없다.

이미 전날,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야3당 대표단은 공동 입장문을 통해 "국회의 논의와 별도로 제출된 대통령의 개헌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개헌안 철회를 요청한 바 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아예 개헌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를 전면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날 오전 10시를 조금 넘겨 본회의가 개의되고, 정세균 국회의장이 개헌안을 상정했지만, 의결 정족수인 재적 3분의 2에 미치지 못하는 114명의 민주당 의원들만 덩그러니 참여해 결국 투표는 해보지도 못한 채 막을 내려야 했다.

그러면, 야당의 반대로 표결자체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걸 빤히 알면서도 민주당이 표결을 강행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여당과 청와대는 헌법 130조의 "국회는 헌법 개정안이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의결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근거로 '헌법상 의무'를 지키기 위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는 헌법 54조 2항을 어긴 적이 많았던 국회가 유독 이 조항만 ‘의무’라고 강조하는 건 어딘가 모르게 어색해 보인다.

따라서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야당은 본회의 의사진행 발언을 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개정안을 철회해 달라고 읍소했다.

국회 헌정특위 바른미래당 간사인 김관영 의원은 "참으로 안타깝다"며 "대통령 개헌안 부결이 진정 국민과 민생을 위하고 앞으로 국회의 개헌 논의에 도움이 될 것인지 국익 차원에서 다시 한 번 같이 깊이 고민해봤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통과되지 않을 개헌안 표결 시도는 (개헌을) 지방선거, 정쟁의 도구로 삼으려 한다는 의심을 받게 한다"고 꼬집었다.

민주평화당 헌정특위 간사인 김광수 의원도 “개헌을 살리려면 대통령 개헌안은 철회돼야 한다”면서 “표결강행은 대치만 부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의 개헌안 제출은 개헌의 마중물이 아니라 지방선거 면피용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즉 국회통과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문 대통령이 개헌안을 자진철회하지 않고 표결을 강행한 것은 '지방선거용'으로 당초 예고됐던 6월 지방선거 동시 개헌 투표 무산의 책임을 야당에 돌려 '개헌세력 대 호헌세력'의 구도를 만들려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주당은 투표 불성립 직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 야당을 '호헌세력'으로 규정하며 맹비난했다.

추미애 대표는 본회의 직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회가 헌법에 따라 당연히 해야 할 대통령 (개헌) 발의안에 대한 의결 의무를 저버린 야당들은 낡은 헌법을 지키고자 하는, 이유도 없이 당리당략에 따르는 호헌세력임을 스스로 증명했다"면서 "개헌을 관철해야 할 시대적 사명과 역사적 책무를 저버린 야당들을 국민이 반드시 기억하고 응징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경미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국민의 60% 이상이 대통령 개헌안에 대해 찬성하고 있는데도 헌법을 개정할 호기를 놓쳐버리고 만 것은 전적으로 야당의 책임"이라고 야당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이날 쏟아진 여당의원들의 발언은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대통령 발의 개헌안이 부결로 개헌 자체가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헌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통령 개헌안의 자동폐기로 인해 국회 차원의 개헌논의는 더욱 활성화 될 것이다. 특히 제왕적대통령제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한 채 단지 대통령 임기만 5년단임제에서 4년연임제로 바꾸는 반(反)개혁적 개헌안의 폐기로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을 나누는 개헌논의가 새롭게 진행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모쪼록 대통령 한 사람에 과도하게 권력이 집중된 제왕적대통령제 시대를 종식하고 국민주권이 강화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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