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다, 노회찬"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18-07-23 13:5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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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23일 오전 10시 20분경, 청천벽력과도 같은 ‘노회찬 의원 변사 발생보고’가 편집국장실로 전달됐다. 마치 뭐에 한방 맞은 듯 가슴은 아프고 머리는 혼란스러웠다.

기자들에게 즉각 사실관계를 확인하라고 지시한 후 ‘설마’ 하는 마음에 뉴스를 검색했는데, 다행이 관련 뉴스는 뜨지 않았다. 그래서 ‘오보’라 생각하며 안도하고 있었는데, 곧바로 ‘사실’이라는 현장기자의 답변이 들어왔고, 곧이어 10시 30분경 관련뉴스들이 속보로 올라왔다.
‘아, 사실이었구나.’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물밀 듯 밀려왔다.

노 의원은 정의당 원내대표로서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등 5당 원내대표단과 함께 3박 5일간 미국방문 일정을 함께 소화한 후 전날 귀국했다.

그런데 귀국 바로 다음날인 이날 오전 9시38분경 서울 중구 신당동의 자택 아파트 현관에 쓰러져 숨진채 발견된 것이다. 아파트 17층과 18층 사이 계단에서는 노 원내대표의 외투와 유서가 발견됐으며 유서에는 드루킹 관련 금전을 받은 사실은 있으나 청탁과는 관련이 없고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노 선배와는 개인적으로 각별한 인연이 있었기에 더욱 마음이 아프다. 그는 진보정당을 창당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써왔고, 사실상 오늘날 정의당의 기틀을 마련한 존경받는 ‘진보정치인’이었다. 필자가 민중신문 편집위원장 재직시절 진보정당창당추진위원회(진정추) 위원장이었던 그를 찾은 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에 대해선 깊은 신뢰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드루킹 사건 연루의혹이 불거졌고, 필자는 그에 대해 “실망스럽다”며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다. 반드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게 미안한 일이 되고 말았다. 어쩌면 영원히 마음에 상처를 갖고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필자는 “금전을 받은 사실은 있으나 청탁과는 관련이 없다”는 그의 말을 믿는다. 그러나 항상 도덕성을 강조해왔던 그로서는 ‘돈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게 그 선배의 성품이다.

여야 정치권이 그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일제히 애도를 표하는 건 그의 이런 성품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드루킹 사건을 수사 중인 허익범 특별검사도 이날 "굉장히 안타깝다"라며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사실 노 의원은 드루킹 사건의 ‘몸통’이 아니다. 정작 ‘몸통’의혹을 받는 사람은 따로 있다. 바로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경수 경남지사다.

‘드루킹’ 김모씨 일당이 정치권을 통해 인사 청탁을 했다는 의혹을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는 허익범 특별검사팀이 이날 오전 김경수 지사의 전 보좌관 한 씨를 재소환해 조사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씨는 지난해 9월 드루킹이 이끈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핵심 회원들을 만나 500만원을 수수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 등)를 받으며, 경공모 회원들은 조사 과정에서 드루킹이 김경수 지사에게 경공모 핵심 회원 도모 변호사에 대한 인사 청탁과 관련한 편의를 바라며 금품을 주고받았다고 시인했다.

그런데도 김경수 지사는 천하태평이다.

실제 그는 지난 17일 지역 언론과의 간담회에서 “(특검 소환을) 기다리고 있는데 연락이 안 온다”며 “압수수색도 안 나오고 부르지도 않아 신경을 끊고 지낸다”고 말했다.

그러기에 노 선배의 투신 소식이 더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보다 더한 사람들, 드루킹 사건의 몸통 의심을 받는 정치인들도 있고, 성폭행 의혹을 받는 정치인도 있고, 심지어 조폭연루 의혹을 받는 정치인들도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 없이 버티고 있는데, 그만한 일에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게 너무나 가슴 아프다.

평생을 청렴하게 살아온 그였기에 그는 비록 아무런 청탁이 없었다고 해도 자신이 범죄자의 돈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모쪼록 이번 일을 계기로 허익범 특검팀은 드루킹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몸통을 찾는 일에 더욱 매진해 주기를 바란다. ‘몸통’을 보호가기 위해 특검의 칼날이 한낱 ‘깃털’에 불과했던 노 의원을 향하고, 결국 그를 비극적인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도 특검수사에는 성역이 없어야 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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