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차성縣 치소 평택 비파산성으로 밝혀져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4-05-30 21: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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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大연구소서 발굴 확인 삼국시대에는 상홀현(上忽縣) 혹은 차성현(車城縣), 고려에서는 용성현(龍城縣)으로 불린 지역의 치소(治所·관청소재지)가 지금의 경기도 평택시 안중면 용성리(龍城里) 소재 비파산성(琵琶山城)이었음이 확인됐다.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소장 박경식)는 평택 일대 고대성곽 5곳을 조사한 결과 비파산(해발 102.2m)에 축조된 비파산성(총둘레 1622m, 면적 13만8800㎡)에서 ‘車城’(차성 혹은 거성)이라는 글자가 적힌 기와를 발굴했다고 30일 밝혔다.

앞서 지난 99년 경기도박물관이 이 산성 일대에 대한 지표조사를 실시한 결과 ‘乾德三年’(건덕3년·고려 광종 7년<965>)이라는 절대 제작연대가 적힌 명문 기와를 수습한 바 있다.

조사단은 “차성(車城)에서 용성(龍城)으로 이름이 바뀐 것이 고려 성종 대로 추정되기 때문에 이번 ‘차성’ 명 기와는 이보다 앞선 고려 건국초에 제작됐다고 볼 수 있다”면서 “이 유물로써 이곳을 차성현 치소로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의하면 차성현은 통일신라 때는 당은군(唐恩郡)에 소속된 두 개 현 중 하나로 고구려에서는 상홀현(上忽縣) 혹은 차홀현(車忽縣)이라 했다가, 경덕왕이 차성현으로 고쳤으며 고려시대에는 용성현(龍城縣)이 됐다.

비파산성 북쪽 약 100m 지점에 위치한 안중면 덕우리 자미산성(慈美山城. 둘레 582m, 면적 1만8300㎡)에서는 청동기시대 무늬없는 토기를 필두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 다양한 유물과 유적이 출토됐다.

이곳 출토 유물 중에는 이 성곽이 처음 축조된 시기가 언제인가라는 문제와 관련, 백제시대 토기류가 특히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백제토기로는 목은 길며, 몸통은 계란 모양에 가깝고, 새 발자국 무늬를 두들겨 넣은 대형 옹(甕.높이 63.5㎝)이 거의 완형으로 확인됐으며, 유개고배(有蓋高杯·덮개 있는 굽 접시)도 출토됐다.

이곳 출토유적으로는 6세기 중반 이후 신라가 축조한 것으로 생각되는 용도 미상 대형 저장시설(동서 620㎝ㆍ남북 600㎝ㆍ깊이 160~180㎝)이 관심을 모은다.

바닥을 모두 4구역으로 나눠 돌을 납작하게 깐 이 시설은 백제 고배와 토기가 출토되는 유적을 파괴하고 그 위에 들어섰으며, 그 안에서 출토된 토기와 기와가 모두 신라유물이다.

이와 흡사한 성곽 저수 관련 추정 시설로는 이천 설봉산성에서도 확인된 바 있어 그 용도를 둘러싸고 궁금증을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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