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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식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 |
김종식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
우리나라에서 변호사사무실을 찾아가면 제일 먼저 듣거나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자료(증거나 단서·정보)는 있느냐’이다. 고충을 헤아리기 전에 ‘증거를 가져와야 살펴 볼 수 있다’는 말부터 꺼내기도 한다. 즉 ‘이렇다할 자료 없이는 찾아 오지도 말라’는 격이다. 마치 ‘변호사사무실에 오기 전에 자료수집을 전업(專業)으로 하는 탐정업사무소를 거쳐 오라’는 말로 들릴 정도다.
사실 변호사는 ‘증거 등 자료’를 미처 확보하지 못한 사건의뢰자를 대신하여 탐문이나 관찰·현장답사 등으로 사실관계 파악(소송자료 수집) 목적의 탐정활동이 예나 지금이나 불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변호사 대부분은 ‘자료수집 업무의 지난성(至難性)’ 때문인지 민·형사 가릴 것 없이 ‘문제 해결에 필요한 자료의 획득과 제출은 전적으로 의뢰인의 몫’으로 치부하고 그에 간여하지 않으려 함은 물론 ‘합당한 탐정업’에 의한 자료수집 마저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음이 현실이다.
이러한 변호사업계의 ‘자료수집 손떼기’와 ‘자료없는 사건 손떼기’ 관행에 따라 적잖은 법률소비자들은 변호사를 찾아가기 전에 이런저런 자료를 스스로 확보하려 애를 써보지만 생업으로 시간적 여유가 없거나 자료에 대한 전문지식 부족으로 ‘유의미한 자료의 발견과 획득’에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나의 자료를 얻기 위해 들판을 헤메야 하는 경우도 있고 목격자를 찾기 위해 몇날 몇달 발품을 팔아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려움으로 ‘자료수집 포기 또는 변호사 선임 포기’라는 ‘권익 포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을 제외한 34개국의 경우 일찍이 ‘각종 의문과 궁금 해소에 유용한 자료수집(사실관계 파악)’을 주된 업무로 하는 탐정업이 ‘보편적 직업’ 또는 ‘공인탐정’ 등의 형태로 직업화되어 있음에 따라 자력(自力)으로 자료수집이 어려운 시민들은 이를 통해 문제 해결에 유용한 증거 등 자료를 획득하고 있으며 이렇게 확보된 자료로 변호사를 선임한다. 이때 변호사는 소송사건과 관련한 증거가 불충분하면 언제든 탐정사무소에 자료수집을 추가로 의뢰하는 등으로 실체적 진실 발견에 매진한다. 시민이 자료의 궁핍 때문에 직접 겪는 고통은 거의 없는 셈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탐정업과 관련하여 “신용정보법 제40조4,5호의 금지 대상은 모든 탐정업무가 아니라 ‘사생활을 조사하는 행위와 탐정이라는 호칭을 업으로 사용하는 일’이며 탐정업의 업무영역에 속하지만 금지되지 않는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는 헌법재판소의 판시(헌재2016헌마473,2018.6.28.선고요지)에 이어 경찰청과 금융위원회도 지난해 ’개별법과 타인의 권익을 침해하지 않는 탐정업무는 새로운 법률 제정이나 현행법의 개정 없이도 불가능하지 않음을 확연히 가름’했으며 이로 곳곳에서 보편적 직업으로써의 탐정업(민간조사업) 창업이나 겸업이 이루어지고 있다(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는 현재 8000여명이 창업 또는 겸업으로 탐정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
이러한 법제 환경의 변화와 함께 국내 일부 변호사사무소와 로펌에서도 이미 자체적으로 “변호사와 탐정업무 경력자로 구성된 ‘탐정서비스 팀’”을 두거나 유능한 탐정업체 또는 탐정학술전문가 등과의 제휴를 통해 ‘사실관계 파악에 도움이 될 증거나 단서·정보 등 자료의 수집을 의뢰’할 뜻을 밝히고 있음은 국민생활의 편의와 권익 도모 차원에서 정말 바람직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변호사가 탐정업의 유용성에 공감하고 탐정업이 변호사의 업무에 기여할 때 그로부터 창출되는 효용은 사실과 진실을 밝히는 또 하나의 빛’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한편 ‘개별법을 침해하지 않는 탐정업무의 수행’은 판례와 주무부처의 행정해석 등으로 당장이라도 불가능하지 않음이 명료해졌지만 탐정업을 뒷받침할 기본법(일명 탐정업관리법, 약칭 탐정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면에서 ‘탐정업의 직업화는 시기상조’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든 직업이 꼭 법제화되어야 한다는 법도 없고, 모든 직업이 관리법 제정보다 앞서면 안된다는 법도 없다’는 점이다. 그러한 연유에서 지금의 탐정업이 관리법 없이 이루어진다 해도 이를 불법이라 하지 않는다. 새로운 직업의 탄생에 있어 ‘직업화와 법제화는 별개의 문제’라는 얘기다.
*필자/김종식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한국범죄정보학회민간조사학술위원장,前경찰청치안정책평가위원,한북신문논설위원,치안정보20년(1999,경감),경찰학강의10년/저서:탐정학술요론,탐정학술편람,민간조사학(탐정학)개론,공인탐정법(공인탐정)해설,경찰학개론,정보론,경호학外/등록자격(탐정학술지도사·실종자소재분석사·자료수집대행사)설계/탐정제도‧치안‧국민안전 관련 400여편의 칼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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