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의 청렴-시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들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5-12-15 13:5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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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사단법인 청렴코리아 청년본부장


연말이다. 한 해의 행정은 성과로 정리되고, 정책은 지표와 수치로 평가받는다. 청렴 역시 예외는 아니다. 각종 청렴 우수기관 시상식이 열리고, ‘청렴 기관’이라는 이름의 상패와 인증이 연말 보도자료를 채운다.

그러나 이 계절이 올 때마다 묻게 된다. 청렴은 과연 시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가치인가.
더 정확히 말하면, 청렴은 순위를 매기고 경쟁시켜야 할 대상인가. 너무나 당연한 가치이기에, 이러한 풍경은 씁쓸하게 다가온다.

■ 반복되는 청렴 이슈, 달라지지 않는 구조
올해도 청렴을 둘러싼 장면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정감사와 지방자치단체 행정사무감사에서는 보조금 집행의 부적절성, 계약 과정의 편의 제공, 채용·인사 절차의 불투명성이 다시 지적됐다. 해마다 등장하는 익숙한 단어들이지만,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보도들을 종합해 보면 공공부문 전반에서 채용 과정의 공정성 논란, 내부 통제 미흡, 이해관계 관리의 허점이 반복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감사 결과는 공개되지만, 그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특히 청렴 정책과 평가를 담당하는 영역에서도 신뢰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고 있다. 제도는 존재하지만 내부 구성원과 시민이 체감하는 청렴 수준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존재한다. 청렴을 관리하고 점검하는 주체 역시 예외 없이 검증의 대상이 되는 현실은, 청렴이 특정 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행정 시스템 전반의 구조적 과제임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 같은 지적이 새롭지 않다는 데 있다. 감사 → 지적 → 개선 요구 → 재발이라는 흐름이 반복되면서 감사는 절차로만 남고, 변화는 뒤로 밀리기 일쑤다. 보고서는 쌓이지만 행정의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청렴은 점점 ‘지켜야 할 원칙’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항목’이 된다. 점수와 등급은 남지만 국민의 신뢰는 회복되지 않는다. 반복되는 청렴 이슈는 일부의 일탈이 아니라, 청렴을 형식으로만 다뤄온 구조의 결과다.

■ 연말의 시상, 청렴을 강화하는가
연말이 되면 청렴 관련 시상은 더욱 늘어난다. ‘청렴 우수기관’, ‘청렴 대상’, ‘청렴 최우수’라는 이름의 순위와 등급이 발표된다. 제도적으로 보면 청렴을 장려하기 위한 장치다.

하지만 문제는 ‘청렴 기관’이라는 시상 자체다. 청렴은 성취의 결과가 아니라 공공기관이 당연히 지켜야 할 최소 기준이다. 안전을 지켰다고 상을 주지 않듯, 법과 원칙을 지켰다고 포상을 하는 구조는 오히려 기준을 낮춘다.

청렴은 선택적 미덕이 아니라 공공기관이 존재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다. 법을 지키고, 절차를 투명하게 운영하며, 예외를 사유로 설명하는 것은 ‘잘해서 칭찬받을 일’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책임을 져야 할 의무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년 청렴을 ‘잘한 기관’을 뽑아 시상한다. 이 구조는 은근히 청렴에 대한 기대치와 기준을 낮추고 있다는 것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비교적 나았다”는 평가가 곧 “청렴하다”는 선언으로 둔갑한다.
청렴을 경쟁시키는 순간, 청렴은 원칙이 아니라 상대평가의 결과물이 된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한 해 청렴상을 받았다고 해서, 그 이후에도 부정부패가 없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평가 기간 동안만 관리된 청렴이 과연 온전한 청렴이라 할 수 있을까.

실제로 언론 보도와 감사 결과를 보면, 청렴도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던 기관이 이후 채용 비위나 계약 문제, 내부 통제 부실로 다시 지적받는 사례는 낯설지 않다. 이는 특정 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청렴을 ‘기간 한정 평가’로 관리해 온 제도의 한계를 드러낸다.
청렴이 연중의 원칙이 아니라 평가 시기의 성과로 관리되는 순간, 제도는 작동해도 신뢰는 쌓이지 않는다. 상패는 남지만, 시민의 기억은 남지 않는다.

■ 시상이 아니라 접근성은 필요하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지점이 있다.
청렴 콘텐츠, 표어, 공모전, 캠페인 자체는 분명히 필요하고 유효하다.

청렴은 법 조문이나 내부 규정만으로는 체감되기 어렵다. 그래서 최근 몇 년간 공공부문에서는 청렴을 보다 쉽게 전달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어져 왔다. 영상·연극·웹툰·굿즈 등 생활 언어로 풀어낸 콘텐츠, 국민과 청년이 직접 참여하는 공모전과 캠페인은 청렴이라는 추상적 가치를 일상으로 끌어오는 역할을 해왔다.
최근에도 청렴 콘텐츠 공모전과 참여형 캠페인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며, 수상작 상당수는 교육 자료나 내부 캠페인, 대국민 홍보 콘텐츠로 활용되고 있다. 청렴을 ‘배워야 할 규범’이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메시지’로 전환하려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접근은 분명 의미가 있다.

문제는 이 흐름이 ‘청렴 시상’과 동일선상에 놓일 때다. 청렴을 알리는 활동은 장려할 수 있다. 그러나 청렴 그 자체를 하나의 척도로 삼아 기관 간 순위를 매기고, 우열을 가려 상을 주는 구조가 과연 옳은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청렴 콘텐츠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지만, 청렴 시상은 청렴을 성과 관리의 대상으로 바꾼다. 참여를 넓히는 정책과 평가를 단순화하는 제도가 뒤섞일 때, 청렴은 원칙이 아니라 이미지가 된다.

더 큰 문제는 이 시상이 청렴의 본질을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왜 그 기관이 청렴한지, 어떤 절차를 바꿨는지, 반복되던 문제를 어떻게 끊어냈는지는 잘 보이지 않고 결과 점수와 등급만 남는다. 그러는 사이 시민의 체감과 현장의 불신은 그대로인 경우가 적지 않다.

청렴은 잘했다고 칭찬받을 일이 아니라, 지키지 못했을 때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할 기준이다. 그렇기에 청렴 문화 확산과 청렴 기관 시상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전자는 계속 확대해야 할 참여 정책이지만, 후자는 신중하게 재검토해야 할 관리 방식이다.
청렴을 알리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청렴을 경쟁시키는 순간, 우리는 청렴의 의미를 너무 쉽게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 점수의 청렴, 체감 없는 신뢰
청렴도 점수는 매년 공개되지만, 현장의 신뢰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이유는 분명하다. 시상은 결과를 포장하지만, 과정은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채용 과정은 여전히 불투명하고, 예산 집행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으며, 계약과 용역의 결정 구조는 닫혀 있다. 이런 상태에서의 시상은 시민에게 이렇게 들린다.
“문제는 있지만, 점수는 괜찮다.”

연말의 청렴이 점수와 상패로만 기억된다면, 그 청렴은 다음 해를 바꾸지 못한다. 그리고 이 체감의 공백은 가장 먼저 청년에게 돌아온다.
연말이 되면 청년들은 한 해를 정리한다. 합격과 탈락, 기회와 좌절의 기억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 과정은 공정했는가?”
“다음 해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되는가?”
“정직하게 노력한 사람이 손해 보지 않았는가?”

청년에게 청렴은 선언이나 추상적 가치가 아니다. 청렴은 기회의 조건이며, 신뢰의 최소 단위다. 그래서 청년은 시상보다 과정의 공개, 이행의 검증, 책임의 분명함을 요구한다.
감사 이후 무엇이 바뀌었는가.
지적은 실제로 이행됐는가.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청렴 정책은 결국 상과 문서만 남기게 될 것이다.

■ 연말의 청렴은 ‘기억’으로 남아야 한다
연말의 청렴은 상이 아니라 국민에게 기억으로 남아야 한다. 그 기관은 지적 이후 무엇을 고쳤는가, 예외를 어떻게 줄였는가, 결정의 이유를 얼마나 설명했는가가 청렴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청렴은 상을 받을 일이 아니라, 지키지 못했을 때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할 원칙이다. 청렴 콘텐츠와 참여 프로그램은 확대하되, 청렴 기관이라는 시상은 줄이고 이행 점검과 재검증의 구조를 강화해야 한다.

연말은 돌아보고 질문하는 시간이다.
올해 우리는 얼마나 청렴했는가가 아니라, 그 청렴이 내년을 바꿀 힘이 있는지 물어야 한다.
청렴은 시상으로 완성되지도 끝나지도 않는다.
청렴은 반복되는 일상과 달라진 행정의 태도로만 증명된다.
그리고 그 변화를 끝까지 지켜보는 주체는 언제나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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