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1-05-12 17: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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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낮추어야 사람을 얻는다.

 
심춘보 전 다산저널 발행인



희망고문이 끝날 시간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8년이 아닌 5년이라서 감사하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변수가 없었더라면 다음 대선에서 민주당은 시부저기 다시 정권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민주당 정권이 잘해서가 아니라 야권에 변변한 주자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보궐선거에서 제대로 한 방 먹긴 했지만 집권여당이 야당을 엄벙하게 보고 오만 방자하게 국정을 운영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윤석열이라는 변수가 등장했다. 야권에게는 상수가 되었지만 민주당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픈 존재다. 든든한 아군을 느닷없이 적으로 돌렸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윤석열이 강력한 대권후보의 반열에 오르게 된 원인은 인간이 저지른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와 같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함부로 대하는 바람에 나타난 기이한 징후.


물론 혹독한 검증이 필요하고 그 검증의 결과에 따라 평가는 크게 달라질 수도 있지만 국민의 지대한 관심의 대상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늘 당장 선거가 있다면 윤석열의 당선은 기정사실이니 말이다.

윤석열이 어떤 식으로 정치 자신을 던질지 아직은 알 수 없으나 국민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보니 개나 소에게 공격의 대상이 되었고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솥에 들어간 콩 신세가 되었다.


자신의 입으로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지도 않았는데 이처럼 십자포화를 받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다. 그만큼 위협적인 존재라는 방증이다. 별 볼일 없는 존재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지 않은가.

여야를 막론하고 윤석열을 공격하는 것을 보면 역시 우리 정치인들의 도량이 협소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코 호전되지 못할 증세다. 아무리 찾아봐도 배를 띄울만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 없고 말이 달릴만한 이마를 가진 사람이 없다. 내 눈에는 그저 그런 사람들뿐이다.

곤룡포를 입어보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상대를 존중하면서 얼마든지 자신을 알릴 수도 있는데 상대를 깎아내리는 것이 자신을 치켜세우는 첩경으로 알고 있는 사람으로 득실거린다.


윤석열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것이 집단을 좌지우지하는 핵심 지지자들의 관심을 받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비난하고 무시하는 것이다. 한국정치의, 특히 민주당의 고질병이다.

혹자는 윤석열이 검사 생활이 전부였다는 사실만으로 정치의 정자도 모르는 대단히 우매한, 깊이가 없는 사람으로 폄하해버린다.


윤석열이 아닌 누구라도 그렇다. 그 사람의 머릿속이나 뱃속을 들여다본 것도 아니고, 같은 이불을 덮고도 다른 생각을 하는 판에 이력서 상의 경력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고, 상대를 수준 낮은 언어로 공격하는 것은 인격에 하자가 있는 사람이나 할 짓이다. 면접도 보지 않았는데 그 사람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자기 자신도 다 모르면서.


상대를 밟아야만 자신이 우뚝 서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화롯불을 머리에 이고 작두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로운 일이다.

설령 윤석열이 검사가 아닌 능참봉이었다 하더라도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상대를 평가하는 태도가 달라야 한다. 그를 깎아내리는데 역점을 두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민심의 역습을 당한다.


하루 세 번 자신을 돌아보라고 했던 曾子는 “능력이 있어도 능력 없는 사람에게 묻고 학식이 많아도 학식이 적은 사람에게 물으며 재능이 있어도 드러내지 않고 지식이 가득해도 텅 빈 것처럼 하고 시비를 걸어와도 따지지 않는다.”라고 했다.

세 사람이 함께 일을 하면 반드시 본받을 만한 사람이 있다 했고 심지어 제자에게서도 배울 게 있다고 했거늘 그렇게 깔보고 무시해서야 쓰겠는가. 윤석열의 장점은 본으로 삼고 단점은 자신의 장점으로 보완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한데 시쳇말로 온통 까는데 혈안이 되어 있으니 이 얼마나 한심한 작태인가 말이다.
상대를 존중하고 상대를 인정하면서 자신의 장점을 알리는 것이 현명한 태도가 아닐까 싶다.

자신보다 기량이 월등하다고 시기하고 적대시하는 것에 매몰된다면 자신에게 이롭지 않다.
김연아가 아사다 마오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도 아사다 마오의 단점을 자신의 장점으로 승화 시켰기 때문이다.

상대를 멸시하는 언어는 단순하다. 허나 상대를 치켜세우는 언어는 다양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정치가 말의 향연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말하기로 치자면 ‘맹자’와 ‘고자’를 능가할 사람들의 입에서 상대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단어들만 달고 다녀서야 쓰겠는가. 큰 북에서 큰소리가 나는 법이고 혀가 길어야 침을 멀리 뱉는 법이다.

선거가 아무리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게임이라 하더라도 도량이 넓은 정치인은 받기 싫어도 국민의 지지를 받게 마련이다. 국민이 보는 눈은 예리하고 정확하다. 물론 상대를 칭찬하는 것에 익숙지 않은 점 이해하지만 상대의 단점만을 녹음기처럼 틀어 놓는 다고 해서 자신에게 점수가 쌓이는 건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정치인들 입에서 ‘미래세대’라는 말을 달고 산다. 말로만 뭐를 해주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위대한 유산은 바로 그런 것이다.

노자는 그랬다.


“백성의 위에 서려는 자는 반드시 자기를 낮추고 백성의 앞에 서려는 자는 반드시 자신을 뒤로해야 한다.”라고.

요컨대 겸손이라는 말은 백번 천 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자신을 낮추어야 사람을 얻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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