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우의 인물채집] 마음속의 근육을 키우는 여자!-'바디커뮤니케이터' 박진아 편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4-02-06 10: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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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한 여자를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무모한 여자는 처음이다.


배울만큼 배우고 재벌그룹의 모회사 회장 비서를 꽤 오랫동안 해 본 여자가 어찌 이리 무모한 짓을 하는지...

어느 날 찾아온 ‘루게릭’ 환자의 의지를 꺾을 수 없어 매일매일 사라져가는 몸의 근육들을 붙잡으려 기도하듯 함께 매달린다.


무모한 여자 박진아의 직업은 ‘바디커뮤니케이터’다.


생소한 이름이지만 짐작은 된다.

요가, 필라테스, 웨이트트레이닝 마스터가 됐고 직업적 정체성을 정립하기 위해 전문가에게 의뢰해 ‘바디커뮤니케이터’라는 정체성을 확보했다.

그렇다고 매일매일 근육이 사라지는 질병 ‘루게릭’과 맞서 어쩌자는 건가? 현대의학도 포기한 것을...

처음엔 건장하고 멀쩡한 모습으로 그녀를 찾아온 그 환자는 어깨의 통증을 완화시키는 운동요법이 필요하다고 해서 1대1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운동을 하면 할수록 근육이 붙어야 할 곳에 오히려 근육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운동 생리학과 해부학을 공부했던 그녀가 ‘루게릭’이라는 실체를 만난 건 수업을 시작한지 6개월 후였다.

그 후 계속되는 근육소실이 전신으로 퍼졌고 휠체어에 앉아서 목을 가눌 수 조차 없게 된 지금까지도 그 환자는 그녀와의 수업을 원한다.

다른 회원들과 별도의 단독공간에서 간신히 처치인지 운동인지 구분 안가는 움직임을 한 후에 비로소 희미한 웃음을 짓는 그를 보내고 나서 그녀는 런닝머신 위에서 단거리 선수처럼 최고속으로 달리며 운다.

"의사도 포기한 환자를 어쩌려고 하는가?“ 묻자 "어쩌긴요, 근육이 사라져서 말도 못하고 이젠 먹지도 못해 튜브를 꽂았는데 그래도 여기에 와야 살 것 같다는데... 부인이 대학병원 간호부장인데 모두 포기했대요. 여기 오면 살 것 같다니까 보이지 않는 마음 속의 근육이라도 키워 봐야지요."

의학적으로는 몸에 근육을 채울 수 없다는데 그 환자는 혼자서 마음 속에 근육을 채우는 듯 하단다. 그래서?

"찾아 올 의지가 있다면 뭐든 해 줄 겁니다. 할 수 있다면 마음 속에라도 근육을 채워주고 싶어요.“

그녀의 직업은 ‘바디커뮤니케이터’이다. 참 무모한,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대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하는 걸 좋아한다.

‘내 몸을 내 맘 같이!’가 그녀의 슬로건이다.

삐딱하게 앉아있는 나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바디커뮤니케이터’답게 말했다.

"당신의 몸은 대화를 원합니다!"라고,

"진짜 알아듣는가?"라고 물었다.

"당신의 몸이 화를 내고 있는 걸 당신만 모르는 거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가?" 생각하고 있는데 진짜 알아들은 듯,

"자세가 바르지 않은 건 몸이 엇나가고 있는 거고 몸이 불만스런 할 말이 있다는 뜻입니다. 몸이 화를 내고 있는 중이지요. 바른 자세로 서기가 힘들어서 그런 거예요."

"푸른 바다에 사는 해초처럼 싱싱한 내 몸에 이끼처럼 쌓여가는 것들이 있으면 언젠간 큰 고통이 된다는 걸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그래서 몸은 갖은 신호와 징후를 통해 대화를 시도하는데 바람난 망아지처럼 맘 가는대로만 가버리면 어느 순간 몸은 대화를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느날, 허탈한 표정으로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다 "허, 정말 늙었네, 그렇다고 빵빵했던 근육들이 배로 내려앉을 건 또 뭔가"라며 우울한 독백을 하게 된단다.

"그땐 이미 많이 늦어 버리는 거에요. 늘 '초심'을 생각 하지요. 내가 무엇을 위해 목표를 정하고 가는가? 그리고 일정한 루틴이 생겼을 땐 내가 '중심'을 벗어나고 있지 않은가 돌아봅니다. 그리고 나서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가, '진심'으로 기쁜 일인가를 확인합니다."

‘바디커뮤니케이터’ 박진아 원장은 일산에서 바디커뮤니케이션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외로운 도시민들의 몸과 부딪히고 땀내 나는 대화를 거듭하며 산다.

그녀가 배운 요가는 남들보다 특별한 직장생활의 후유증을 털어내기 위한 시도였는데 의외로 ‘평생과목’이 되었고 필라테스와 웨이트 트레이닝은 국ㆍ영ㆍ수 같은 필수과목이 되어 새로운 인생수업을 시작하게 됐다.

재벌그룹 오너와의 대화보다 훨씬 더 어려운 회원들과의 대화가 벅차기도 하지만 그들의 몸이 던져오는 대사는 직설적이고 정직해서 개인수업을 하면서 "고해성사를 듣는 성직자같아 우쭐해 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아직은 생소한 이름으로 들리는 ‘바디커뮤니케이터’ 박진아!

그녀는 내 몸이 던지는 대사가 심상치 않다며 "몸이 하는 말을 잘 들어 주라!"고 충고했다.

사람들의 몸과 마음 속에 튼튼한 근육을 심어주는 일을 신앙처럼 수행하는 사람, 박진아는 진심의 ‘바디커뮤니케이터’다.

그녀는 무엇보다 몸이 하는 말을 잘 들어 주는 진심이 있어야 스스로 기쁘게 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가 고해성사처럼 느낀다는 1대1 수업을 신청하기로 했다.

그러다 갑자기 통성기도나 방언이 터져 나오면 어쩌지...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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