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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코로나19 국민정신건강 실태조사‘에 의하면, 국민 5명 가운데 1명은 우울 위험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을 생각한 사람 비율 역시 코로나19 발생 초기인 2020년 3월보다 40% 가량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장기화와 이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의 지속으로 인한 고립감, 경제적 어려움 등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치료 등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코로나19 발생초기에 비해 증가하고 있고, 코로나19로 인해 우울증 환자가 증가하고 있지만,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편견으로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국민 중 최근 1년 간 정신건강서비스 이용률은 10% 미만이라고 한다. 외국에 비해 매우 낮은 실정이다. 특히 우울증의 치료율은 미국은 90%이지만 우리나라는 10% 미만이다.
우울증환자의 60~70%가 자살을 생각하고 10~15%가 자살을 하는 위험성을 고려한다면,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 우리 국민은 하루에 36명, 한해에 13,195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2020년 기준). 특히 우울증 첫 3개월 동안 자살 위험률이 50~70배로 가장 높다. 따라서 우울증을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해야 자살을 효율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코로나19보다 무서운 것이 치료받지 않는 우울증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기피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기록이 입시나 취업에 불리하게 작용하거나 보험 가입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신건강의학과뿐만 아니라 모든 과의 진료행위에는 기록이 남는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보아도 당연히 의무기록이 남는다. 문제는 정신질환 분류기호인 F코드이다. 통계청의 질병분류기호에 따르면, A코드는 감염성 질환, C코드는 암, F코드는 정신질환 이런 식이다. F코드 진료기록을 포함한 정신건강의학과 뿐만 아니라 모든 과의 의무 기록은 본인의 동의 없이는 타인이 조회해볼 수 없고 유출될 수도 없다. 의료법ㆍ건강보험법ㆍ개인정보보호법 등에 의해 엄격하게 보호되기 때문이다. 유출하면 불법으로 처벌을 받는다.
따라서 입학이나 취업하고자 하는 학교와 회사에서 정신질환 분류인 F코드에 대한 기록을 알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은 없다. 단순히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입시ㆍ취업에서 불리하게 작용된다면, 이는 현행법상 불법 행위이다. 또한, 과거에는 정신질환 즉 F코드 기록이 있으면 보험 가입을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국가 인권 위원회가 정신 질환 병력만으로 보험 가입을 거부하는 것은 문제라며 개선 권고를 내린 후 2016년부터 보험 약관이 많이 개선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정신질환 즉 F코드가 있으면,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편견 때문에 입시·취업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고, 보험 가입 등에서 제한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특정 직업군에서 정신 질환을 결격 사유로 제한하고 있고, 문제는 이런 규정이 정신질환의 경중(輕重)이나 치료 경과는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또한, 입학ㆍ취업 시 정신건강의학과 병력을 묻는 경우가 많고, 공식적으로는 정신질환자라서 배제시킨다고 하지 않겠지만 입학ㆍ취업에서 배제시키는 수단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보험 가입 등에서도 제한 받는 경우가 있다. 물론 보험금 지불 위험이 현저히 높은 고객의 가입을 거절하는 것은 보험사의 권리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가벼운 정신질환의 진료 기록 등으로 차별하는 것은 법 위반 소지가 크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여전히 다른 고객을 위해서라도 보험사의 손해를 방지하는 것이 보험사의 고유한 권리라고 주장하며 보험 가입에서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있고, 가입 시 정신건강의학과 병력을 묻고 이를 알리지 않았을 경우 고지의무 위반으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정신질환을 치료한다는 것이 왜 보험사의 손해 가능성을 높인다고만 생각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하는 경우는 그만큼 본인의 건강에 관심이 많고, 오히려 질환을 잘 관리하여 질환을 회복하고 중증으로의 진행 가능성이 낮아져 치료비가 적게 들 수도 있다. 건강검진을 잘 받는 사람에게 보험료 인센티브를 주듯 치료를 잘 받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보험사의 평가도 재고(再考)되어야 한다.
정신건강의학과가 아닌 타과의 질병코드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거나 그것이 이슈화 된 적이 있는가? 단지 특정과의 질병코드 때문에 입시ㆍ취업 및 보험 가입 등에서 피해를 받는가?
그렇다면 우리에게 F코드는 무슨 의미인가? 우리나라는 이 F코드로 인해 단 한 번의 약물 처방 기록만 있어도 입시ㆍ취업 및 보험 가입에서 차별의 폐해가 있는 경우가 있다. 단순히 수면제 처방만 받아도 F코드이다.
‘2016년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18세 이상 성인의 주요 17개 정신질환에 대한 평생 유병률은 25.4%이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국민 4명 중 1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사람 중 정신건강서비스를 한 번 이상이라도 이용한 사람은 5명중 1명에 불과하다. 즉, 80%가 치료 받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신보건 전문가들과 보건복지부도 ‘F코드 차별의 폐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마련된 것이 ‘Z코드’이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단순히 상담만 받을 경우 F코드가 아닌 일반 상담치료를 의미하는 Z코드를 부여할 수 있도록 했다.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을 낮춰 의사와의 상담을 활성화해보려는 취지이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다. 'Z코드'는 ‘F코드 차별의 폐해’를 일부라도 해소해 가벼운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적기에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자는 조치였다. 그러나 최소한의 약물치료도 하지 못하는 Z코드는 치료에 상당한 제한을 준다. 감기환자가 고열이 나는데 해열제 처방을 하지 못하고 오로지 냉찜질만 하라고 하지 않듯이, 예를 들면 우울증의 경우에도 항우울제 등의 약물치료와 정신치료(상담)를 함께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감기환자도 초기에 잘 치료해야 환자의 고통을 경감시키고 합병증으로의 이행을 막을 수 있듯이, 우울증도 초기에 잘 치료해야 환자의 고통을 경감시키고 자살을 막을 수 있다.
국제연합(United Nations, UN)은 그동안 정신건강증진, 예방, 관리가 부족했기 때문에 코로나19 대응체계에 차질이 발생했다고 보고하면서, 코로나19 문제 최소화를 위해서는 사회전반에 걸쳐 정신건강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pandemic)' 뿐만 아니라 '멘탈데믹(mentaldemic)'에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코로나19 우울증 검진ㆍ치료와 자살 예방에 우리 사회가 본격적으로 나서야 할 때이다. 우울증 검진ㆍ치료와 자살 예방을 방치하는 것은 국가적 타살이다. 국민 정신건강 증진과 자살예방은 국가 책임이라는 인식하에 국가의 종합적이고 통합적인 정신건강 정책 수립과 실천이 필요하다.
국민 정신건강증진을 위해 국가가 가장 우선해야할 정책 중 하나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가로 막는 ‘F코드 차별의 폐해’를 없애는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막는 행위는 정신질환 악화로 인한 자ㆍ타해 위험을 예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정신질환(F코드)으로 진료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입시ㆍ취업 및 보험가입에 차별과 불이익을 주는 행위는 최소한 중대재해법에 준하는 처벌로 엄벌하는 법 제정과 정신질환 편견 해소를 위한 대국민 캠페인이 필요하다. 정신질환 분류기호(F코드) 차별 폐해의 철폐는 국민정신건강 개혁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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