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평등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위로와 행복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2-03-24 14: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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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성 서정대학교 겸임교수



돈 없이 행복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돈으로 행복을 살 수도 없다. 사람은 누구나 지향하는 가치나 목적을 이룰 수 있기를 꿈꾼다. 그 과정에서 생업을 하며 물질적 기반을 마련하고, 학습을 하며 한 차원 더 나은 삶을 일구어나간다. 그 시간에 어떤 컨텐츠를 채워 나가는냐에 따라 각자가 일구어내는 결과물의 색깔이 다양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 사회의 복지와 문화라는 컨텐츠가 개별적인 개인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어 가는 과정은 신비스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복지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리고 학습하며 소득이 향상된다면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행복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리 쉽게 답이 나오지 않을 듯싶다.


소득과 행복의 관계를 보면 1인당 GDP가 높은 국가가 행복수준이 더 높게 나온다. 그러나 일정 소득 수준 이상의 국가들은 행복수준이 정체되어 오히려 감소되는 경향을 보인다.


경제성장이 국민의 행복을 증진시키지만은 않는다고 처음으로 주장한 이는 이스털린이라는 경제학자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나 행복하다고 느끼는 국민의 비율은 30% 내외에 불과하며, 또한 그 비율이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러한 이유로 경제학자들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행복감이 증대되지 않는 현상을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 Paradox)'이라 했다.


한국사회가 1인당 GDP 3만 달러라는 성장을 일구고 세계무역 7대 국가로 성장했지만, 한국민의 행복도는 OECD국가 중에서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보면 이스털린의 역설을 설명하기 좋은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민은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넘어서서 상당한 사회경제적 자본을 구축했음에도 왜 행복하지 못할까? 오히려 1030세대의 자살이 사망원인의 1위를 차지하는 역설이 왜 발생할까?


한국행정연구원이 발표한 사회통합실태조사를 보면 한국 성인의 행복감이 2013년부터 증가추세였으나 2018년 이후부터 감소세로 돌아섰다고 한다. 2018년 이후 경제성장 둔화와 실업률 증가도 행복 감소에 영향을 주었겠지만, 촛불시위로 촉발된 시민의 승리가 있었으나, 그리 달라지지 않는 정치권 구태에 대한 염증, 새로운 시류를 담아낼 수 있는 정치세력이 형성되지 못함에 따른 국민의 정치적 실망감이 더 큰 비중을 차지 않았을까 싶다.


세계가 눈여겨 본 촛불시위였고, 무소불위라는 대통령을 ‘파면’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문이 담긴 종이 한 장으로 날려 보냈지만, 정치권이 얼마나 많은 혁신을 했으며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는지 그다지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집권여당의 대선패배였지만 역대 최소 표차이 0.7%에 함몰된 탓인지 청와대와 인수위라는 신·구세력 정면충돌이라는 자극적인 기사제목이 헤드라인뉴스를 장식할 정도로 앞으로의 행보를 보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국민이 느끼는 상실감의 깊이는 얼마나 크겠는가.


국민이 행복하고 싶어도 행복하기 참 어려운 정치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행복에도 처한 상황에 따라 격차가 있다.


행복감은 사회적 관계 그리고 신뢰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 만나거나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사람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더 행복감을 느낀다. 그러한 행복의 요인이 학력, 소득, 자산이 맞물리고 거주지가 수도권이냐, 지방이냐에 따라 또다시 어깃장이 나면, ‘당신은 행복하냐’는 물음 자체가 심오하게 된다.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거창하게 산업, 교육, 부동산, 노동시장 등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적 요인들이 갖고 있는 편차와 격차를 해소하자고 하면 오히려 뜬금없다.


행복하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인 문제가 우리에게 있다는 점을 공감하며 인지하는 것부터 순서일 듯싶다.


누구나가 형평성 있게 대우받을 수 있고, 자유롭게 공간을 활보할 수 있으며, 소소하지만 평등한 시간을 우리 모두가 공유할 수 있다면 조금이나마 개인과 사회의 행복감은 올라가지 않을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반려견과 함께 한가로이 한강변 공원을 산책하는 모습이 회자되었다. 인수위 참모들과 함께 동네 음식점에서 김치찌개를 나눠 먹는 장면도 눈길을 끌었다.


한강변 공원과 동네 음식점에서 그 순간을 같이 한 시민들은 각자의 모든 신분을 벗고 잠시나마 평온하고 평등했다.


새로운 정부는 청와대를 떠나 용산에 터를 잡는다고 한다. 깊은 굴 속에 처박힌 듯한 이미지의 청와대를 떠나기로 한 만큼, 그러한 평등의 순간이 자주 있기를 바란다. 정치권에 염증나고, 사회적 격차로 골이 깊어진 국민의 마음에 ‘우리는 공동체라는 울타리에 함께 사는 이웃’이라는 위로가 생길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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