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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만남의 인연은 다 있게 마련이다. 필자의 경우도 문단에서 운 좋게 귀한 분들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문단의 큰 어른이신 한국문인협회(약칭, 한국문협) 이사장 두 분을 만난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선연(善緣)이었다.
문단의 수장이신 두 분 다 권위적이지 않고 소탈하신 분이다. 이 분들을 통해서 한국 문단의 적지 않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나뭇 잎새 다 져버린 겨울 문턱에 들어선 어느 날 이었다. 그날은 동숭동 대학로에 소재한 예총회관에서 문인 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제24대 한국문협 김년균 이사장은 그 자리에서 수줍은 듯 홍조를 띤 얼굴로 필자에게 꽤 큼직한 도자기를 선물했다. 그 도자기에 새겨진 그의 친필은 ‘어떤 일에 착수하기 전에 이미 충분한 복안이 서 있다’라는 ‘胸有成竹’이라는 글귀와 ‘마음을 꼿꼿이 하라’였다. 딱 맞는 말이다. 이 글귀가 의미하듯, 세상 일이 준비 없이 그냥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필자에게 속삭이듯 나직이 “좋은 글 많이 쓰세요.”라며 독려의 말을 해준 그는 훌륭한 인품을 지닌 참 순박한 분이었다. 지금도 그 문구가 적힌 그 도자기를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두고, 가끔 그 뜻을 되새겨 본다. 힘들 때 힘이 되는 짧고 좋은 명언이다.
또 한분이신 제25대 정종명 이사장은 그가 한국문협 편집국장 시절에 처음 만났다. 첫 인상이 깔끔한 선비풍에다 차분하고 참 겸손하다 싶은 느낌을 받았다. 그는 누구 못지않게 한국문협 발전에 뚜렷한 목표와 사명감을 갖고 있었고, 상당한 배포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해 연말쯤 이었다. 필자의 행사장에 온 그는 차기 한국문협 이사장 출마의사를 조심스럽게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뜻대로 이사장이 되었고 바로 그해 한국문협의 동숭동(대학로)시대를 마감하고 오늘의 목동시대를 연 장본인이다.
문단 데뷔 이 후 한국 문협 제24대 김년균 이사장 시절과 또 그 다음 제25대 정종명 이사장 때 과분하게 두 차례나 한국문협 대변인 직을 맡았다. 지금은 한국문협 자문위원이다.
돌이켜 생각건대 그 당시 필자는 문인으로서 정당 대변인 활동을 했기에 그 경력을 보고 낙점하지 않았나 싶다.
이렇듯 양 대를 걸쳐 대변인을 맡았기에 들은 것도 많고 본 것도 많다. 그러나 여기서는 한국문협 선거를 직접 지켜 본 경험담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한국문협의 이사장 선거는 문단의 대선과 마찬가지다.
이른바 문단 대선을 치열하게 치르다보니 그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경험했다. 이중에서 제25대 선거가 특히 더 그랬다. 이 선거는 선거 이후에도 상당기간 볼썽사나운 진흙탕 싸움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제25대 한국문협 이사장에 선출된 정종명 집행부의 출범은 의외로 순탄치 않았다. 일부 낙선자를 중심으로 ‘문협비대위’라는 카페를 만들어 새 집행부의 출범을 사실상 막았기 때문이다.
선거 결과에 불복한 이들의 주장은 ‘부정선거’ 의혹제기였다. 양측은 격렬한 진실공방을 벌였고 급기야 비방과 인신공격이 문협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도배되었다. 결국 법적 싸움 끝에 판명된 진실은 근거 없는 허위 사실이었다.
그 때의 일에 대해 최근 정종명 전 이사장은 어느 기고문에서 “이사장 당선자를 곤경에 빠뜨릴 목적으로 저지른 야비한 농간질 이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에 대한 근거 없는 모함과 비방도 한국문협이 감당해야 할 역사적 몫이고, 어쩌면 후인들에게 좋은 교훈이 되리라는 판단이었다”라고 말했다.
법정 다툼으로 까지 번진 이 사건은 우리 문단 선거의 추한 민낯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올바른 문인 정신이 실종된 문단 선거전은 결국 법적 소송전으로 확대된 것은 우리 문단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세월이 참 빠르다. 어느 덧 11년 전의 일이다.
2011년 1월 22일,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개표는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검표를 거쳐 제 25대 임원 선관위에 의해 새 이사장 당선자가 확정되었다. 이로써 건곤일척(乾坤一擲)의 혈전을 치르는 듯한 한국 문협 이사장 선거는 드디어 막을 내렸다.
그해, 겨울밤은 유난히 추웠다.
그날 밤 새 이사장이 발표되는 순간, 한국문협 사무실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확 얼어붙었다. 예상을 깬 선거 결과였다. 선거 당락에 따른 사무처의 두 간부 직원 얼굴에도 그야말로 희비가 엇갈렸다. 그들도 문단권력의 향배를 가르는 선거전을 앞두고 이미 양분되어 서로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선거 결과에 대해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날 밤 제25대 임원선거 결과 보도 자료를 곧장 언론에 배포(配布)했다. 특히 “소설가 출신 신임 이사장은 김동리 선생 이후 23년 만에 처음으로, 탈 장르를 이뤘다는 데 의미가 있다”라고 강조한 것이 뜻밖에 뉴스 가치를 더 높였다. 이는 제18대 이사장에서 제24대 이사장까지 모두가 줄곧 시인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선거권이 있는 한국 문협 회원 중에 시 장르 쪽 숫자가 훨씬 많은 것이 당선 원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제25대 선거는 달랐다. 시 장르 후보가 우세할 것으로 보였던 선거 결과는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소설 쪽 후보가 상당한 표차로 이겼다. 아마 수적으로 열세 장르인 소설 쪽 정종명 이사장 후보의 당선은 그 후보에 대한 신뢰와 탈 장르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것 같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선인은 상대후보에 적지 않은 격차(477표차)로 이기고도 ‘부정선거’루머와 논란에 큰 홍역을 치러야만 했다.
지성과 감성을 아울러 갖춘 문단인들이 어느새 정치화 되면서 서로 헐뜯고 다투는 눈살 찌푸리게 하는 일이 왕왕 있었다. 이렇다보니 문단의 한 원로는 “역대 문단 선거가 조용하게 치러진 예가 드물었다”고 회고했다. 특히 한국문협 선거가 그렇다.
앞서 말했듯이 복마전 같은 정치판 못지않게 두 편으로 갈라진 문단집안 싸움이 낯 뜨거운 내홍으로 비화되기 일쑤였다.
현재를 기준으로 한국문협 이사장은 제27대 째다. 한국문협 이사장 선거가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뀐 것은 제20대(1995년)선거부터 제27대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단에서 만나는 사람들 마다 한결같이 직선제 선거 이후 한국문협 이사장 선거는 늘상 시끄럽고 잡음을 일으켰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제27대 이광복 이사장 선거가 그렇다. 유례없이 압승을 거둔 제27대 집행부는 시작부터 아무런 후유증 없이 비교적 잘 순항하고 있는 중이다. 짐작하건대 압도적 표차(1237표)로 이겨서가 아닌가 싶다.
필자는 제27대와 달리 상당한 표차로 이기고도 큰 후유증이 있었던 제25대 이사장 선거 전말(顚末)을 대체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직접선거에 의한 문단 권력이 정치 권력의 속성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한 셈이다.
이처럼 한국문협 선거에 많은 폐단을 낳게 하는 것이 바로 직선제 이사장 선거제도가 아닌가 싶다. 물론 어떤 선거 제도를 만들어도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현행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시정하고 효율적인 제도 개선 방향을 위해서라면 한국문협 전 회원의 의견수렴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한국문단 선거의 고질적 병폐가 치유되었으면 한다.
이 시대, 한국문단의 위상과 발전이라는 대의를 위해 화합과 배려 속에 다함께 고민하고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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