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우의 인물채집] 칼을 품고 슬퍼하는 남자를 만나다!-작가 이상훈 편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4-01-31 15:5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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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상훈은 참 불행한 사람이다.


그가 조금만 부지런했다면 지금쯤 스필버그 이상의 능력자가 되었을텐데... 방송국에서 주는 월급 챙기며 유유자적 하느라 운명를 놓쳤다.

1990년 초반기에만 정신을 차리고 '칼을 품고 슬퍼하다! '를 출간했다면 지금쯤 그는 전세기를 타고 세계를 누비며 사명대사라는 초 대박스타의 책과 영화와 드라마와 게임등으로 그의 존재를 전도하고 있었을 텐데... 참 불우한 작가다.

방송국에서 끝까지 월급받으며 "이제는 됐다!"고 등 떠밀때까지 있다가 이제 뒤늦게 "그래도 나가 글 줄은 좀 썼다!" 며 녹슨 칼을 휘두르는 저잣거리의 낭인처럼 글을 써대기는 하는데 허긴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삿된 말은 아니어서 나름 베스트셀러라고 이름도 오르고 베스트셀러작가답게 팬 사인회에서 독자들 줄 좀 세워 보기도 했다.


그래서? 그것이 무슨 작가의 부귀영화나 국가의 위상을 그리 높이는 일도 아니어서 여전히 안타깝다.

만약에 '소설목민심서'가 연간 수백만부 팔리던 90년 초반에 딱 부러지게 사표 내고 나와서 사명대사와 담판을 냈다면, 칼을 품고 슬퍼하던 사명대사를 오대양 육대주에 전도하며 글로벌 신화를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당시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서점에서는 성벽처럼 쌓여있던 사회과학 도서 코너가 무너졌다. 

 

그리고 독서열이 높은 그 독자층은 민족소설 이라는 신장르에 빠져들고 그 힘은 출판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소위 출판 천만부 시대가 도래했던 거다.


그리고 30여년이 훌쩍 지났다. 책말고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도 많은 세상이 됐다.


'칼을 품고 슬퍼하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긴 했지만 예전 숫자에 비하면 '워스트 셀러' 를 낸 불우한(?) 시대의 작가 이상훈을 대면하고 물었다.
 

"이제야 사명대사를 데뷔시킨 이유가 무언가요?"

"늦은 감은 있지만 오래 전부터 생각을 숙성시켜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칼을 품고 슬퍼하는 사명대사의 그 칼이 그의 가슴 속에 전이되는 순긴부터 수시로 베어내는 듯한 통증을 느꼈겠지만 ,그걸 회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마도,


사명대사가 품은 그 칼이 작가 이상훈의 가슴속에 있는 한 술 한잔 털어 넣고 노래 한자리 부를 때마다 뜨끔뜨끔 가슴이 아려왔을 거다. 

"언젠가는 사명대사가 품은 그 칼을 놓게하고 자유롭게 그의 길로 떠나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칼을 품고 슬퍼하다!'라는 이 책의 제목을 끝까지 지킨 겁니다. 사명대사의 육성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너무 늦었다. 칼을 품고 슬퍼하던 그 영웅의 한숨소리가 이 땅을 뒤덮고, 한반도에는 다시 그 때의 전운이 폭풍전야처럼 묵지근히 고여 있는데 백성들 또한 그때처럼 '천진난투'하며 상투잡이에 여념이 없는데...

"좀 더 일찍 사명대사가 칼을 품고 슬퍼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대중에게 알렸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했더니 이상훈 작가의 답이 참 터무니 없다.


"아 그때는 방송국에서 할 일이 많아서요. pd라는 직업이 굉장히 번잡한 직업이거든요. "

그걸 누가 모르겠는가?

‘쇼 비디오자키’, ‘유머 1번지’, ‘열려라 웃음천국’, ‘기쁜 우리 토요일’, ‘LA 아리랑’,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 등 주로 웃기고 재미있는 일만 하던 스타 PD 이상훈을 세상이 다 알고 있었다.


게다가 늘 안팔리는 에세이 장르에서 그가 쓴 '고향생각'마저 20만부 이상 팔아치운 불세출의 재주꾼이었다.

그 뿐인가. '제명 공주', '김의 나라', '한복입은 남자' 등 20권에 가까운 책을 연달아 출간했으니 보통 사람이겠는가?

그 중 소설 '한복입은남자'는 내년 4월 LG아트센터에서 뮤지컬로 공연이 확정되었고 뮤지컬 제작사 EMK에서 해외로 수출할 예정이다.

그 많은 일들을 해치우며 미루다가 이제야 '칼을 품고 슬퍼하다!'를 내놓으니 사명대사는 참으로 칼 날 세워 무엇이라도 베고 싶을 만큼 슬펐을 것이다.

"지금, 이순신 장군 영화가 찍으면 천만이 드는 시국이고 사명대사가 품은 검광만 스쳐도 천만대박이 날 것이 분명한데..."라고 말했더니, 그 틈에 이상훈 작가는 "그렇잖아도 드라마 ‘불꽃속으로’를 제작한 유호식 대표가 '칼을 품고 슬퍼하다!'를 읽고 눈물을 훔쳤다며 드라마 제작을 하겠다고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라도 사명대사의 육성이 세상에 터져나와 혼돈의 21세기 한가운데서 서성이는 중생들에게 서늘하게 "할!"을 외쳐주면 청명하게 깨어날 수 있지 않을까?

"늦었지만 이제라도 사명대사의 진심어린 마음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어서 스스로 위로가 됩니다. 제 글을 통해 대중들이 사명대사의 진면목을 마주하는 기회가 된다면 참으로 영광스런 일 입니다."

마치 시민 마라톤대회에서 7등으로 골인한 아마추어처럼 들떠있는 작가 이상훈의 천진함이 정겹다. 히죽 웃는 착한 눈꼬리가 히끗하게 삐죽거리는 머리칼과 절묘한 조화다.

재주꾼 방송PD로, 손빠르고 속도감 있는 작가로 정평이 나있는 '잡가' 이상훈은 아마도 사명대사와의 접전으로 인해 후반기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휘말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끝내는 사명대사가 품고 있던 그 칼을 그에게 던져놓고 훌훌 가버릴 것 같은데...

작가보다는 잡가로 살아온 이상훈이라는 여린 남자는 사명당이 던지고 간 그 칼을 들여다 보다가 늙은 농부의 호미자루처럼 닳고 닳은, 그러나 빛나는 칼 손잡이를 보고 또 울컥하고 말 것이다. 아마도.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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