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소년 타살 아니다’ 주장은 여러 가설 중 하나일 뿐 ‘새로운 것’ 아냐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2-05-18 15: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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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 31년째 수사는 제자리 걸음, 윤석열정부에 의한 ‘전면 확대 재수사’ 바람직

 

김종식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K탐정단 단장)



1991년 3월 개구리소년들의 실종 상황과 2002년 9월 실종소년들의 유골 발견 당시 현장 취재기자였던 김재산 국민일보 대구경북본부장이 최근 김영규 전 대구경찰청 강력과장의 주장을 중심으로 ‘개구리소년 사건은 타살이 아니라는 주장’을 제기한 ‘아이들은 왜 산에 갔을까’라는 책을 펴냈다.

김 본부장은 이 책을 통해 ‘해가 지고 어두워진 와룡산에서 점심을 거른 채 길을 잃은 아이들이 쌀쌀한 3월 날씨에 비까지 맞아 체온이 떨어져 저체온증으로 죽은 것’이라는 김 전 강력과장의 견해와 ‘살해 동기도 없고, 범행의 도구도 없고, 금품을 요구하는 협박도 없었다’는 점에서 개구리소년은 타살된 사건이 아니라는 김 전 강력과장의 추론을 덧붙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주장은 사건 발생 당시부터 나돈 여러 가설 가운데 하나로 ‘새로운 빛’은 아니지만 당시 책임자급 수사경찰의 소신이 새삼스레 부각되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실제 당시 경찰은 ‘아이들이 길을 잃고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기도 하였으나, 부검을 맡았던 법의학팀은 6주간의 감정 결과 ‘명백한 타살’이라고 결론 내렸으며, 이로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은 사실상 배척됐다. 그러나 법의학팀도 무슨 흉기나 어떤 방법에 의해 사망에 이르게 되었는지까지 구체적으로 규명하는 데에는 한계를 보였다. 이러한 한계에 기인하여 ‘타살이 아닌 저체온사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지금껏 간간이 이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 김 전 강력과장은 당시 법의학팀이 두개골 손상을 사망 원인으로 봤지만 이 손상이 사후에 생겼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사망 후 유골이 발견될 때까지 11년 동안 홍수 등으로 밀려온 돌에 찍힌 사후 골절흔이라는 의견이다. 물론 일리가 있는 설명이다. 하지만 사건 이후 관련 자료와 정황을 지속적으로 분석한 경찰과 많은 전문가들 간에는 ‘개구리소년의 죽음은 타살에 의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김 전 대구경찰청 강력과장의 주장 가운데 ‘살해 동기도 없고, 범행의 도구도 없고, 금품을 요구한 협박도 없었다’는 점 등으로 보아 ‘개구리소년은 타살된 사건이 아니라 본다’고 한 부분에 필자는 황당함을 금할 수 없다. 이 사건이 31년이 지났으나 범인은 물론 범행의 동기나 도구가 특정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일응 그러한 논리로 사건의 성격을 추단할 수도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살해 동기와 도구가 없어 타살로 보기 어렵다’는 얘기는 정말 나이브한 생각이거나 저체온사라는 고정관념에 사로 잡힌 편착(偏窄)이 아닌가 싶다. 범인을 잡기 전에 범행의 동기나 범행도구가 시원스럽게 드러난 경우가 어디 얼마나 되든가? 묻고 싶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범인을 못잡았으니 범행동기나 도구를 모르는 것’ 아닌가! 범인을 잡고 보면 기상천외의 동기와 범행도구가 수사의 허(虛)를 찔러 왔음을 우리는 무수히 보아온 터이다.

그럼 여기에서 김영규 전 강력과장의 ‘살해 동기도 없고, 범행의 도구도 없었다’는 말과 달리 개구리소년이 살해되었음을 시사하는 상상키 어려운 ‘범행동기’와 ‘범행도구’가 적시된 기명(記名) 제보도 있었음을 전하면서 그 요지를 소개해 보겠다(*이는 2021년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가 사건 발생지 인근 주민으로부터 제보 받아 경찰에 재제보(再提報)한 첩보로 매우 유의미한 단서로 평가되고 있으나, 31년 전의 상황을 입증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단계에 있음). 이런 류의 난이도가 높은 제보가 김 과장 재직시에는 없었던 것 아닌가 여겨진다. 이런 제보를 접했다면 감히 ‘살해 동기도 없고, 범행의 도구도 없었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의아스럽다.

제보 내용인 즉 ‘개구리소년 살해범은 산길(와룡산)을 걷던 중 길섶에 놓여 있던 권총과 총알을 발견하고 남몰래 얼른 습득하려 하였으나 마침 같은 방향으로 산행 중이던 지근거리의 개구리소년들과 서로 먼저 발견했다며 심한 말다툼 끝에 화가 치밀어 소년들을 죽여버려야겠다고 작정하고 숲속으로 유인, 습득한 그 권총으로 소년들을 살해했다’는 전문(傳聞) 제보로, 이 제보는 그 진위 여부를 떠나 ‘누가 무슨 동기로 어떤 방법과 어떤 도구로 소년들을 살해했는지가 비교적 설득력있게 언급되어 있다. 혹 재직시 이러한 제보를 한번이라도 받아 본적이 있는지 없는지, 받아 보았다면 그 수사결과는 어떠했는지 자못 궁금하다.

온 국민을 슬픔과 분노의 도가니로 몰았던 개구리소년 살해 사건!. 올해로 3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나 사건 수사는 이렇다할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당시 수사책임 간부가 개구리소년은 ‘타살이 아닌 저체온사’라는 주장(사견)을 지면을 통해 불쑥 제기하자 유족들은 분개하고 있으며 시민들은 의아해 하고 있다. CBS 라디오에 따르면 전국미아실종자찾기시민의 모임 나주봉 회장도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와룡산은 아이들이 늘 다니던 곳이다. 해발고도도 300m 정도로 깊은 산이 아니다. 사건 당일 오전 이슬비가 살짝 왔을 뿐이고, 기온은 영상 5도였다. 저체온증으로 죽었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한편 유족들과 전국미아실종자찾기시민의 모임은 ‘우리나라 최대 미제사건인 개구리소년 살해 사건과 관련된 갖가지 의문과 의혹을 밝혀 줄 국회차원의 진상규명위원회 설치’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하였으나 관철되지 않았다(2021년). 이러한 수사 답보와 관련하여 적잖은 사람들은 ‘노태우ㆍ­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를 거치는 동안 몇몇 경찰청장들이 사건 해결 의지를 보이는 듯 했으나 대개 형식(용두사미)에 그쳤다’며 법치와 정의를 최대 가치로 삼는 윤석열정부(국가수사본부)에 의한 ‘전면 확대 재수사’ 등의 결단만이 이 사건의 ‘영구 미궁화(迷宮化)’를 막을수 있을 것이라 입을 모으고 있다.


*김종식 소장 프로필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K탐정단단장),한국범죄정보학회탐정학술위원장,前경찰청치안정책평가위원,前국가기록원민간기록조사위원,한북신문논설위원,치안정보업무20년(1999’경감퇴임),경찰채용시험경찰학개론강의10년/저서:탐정실무총람,탐정학술요론,탐정학술편람,경찰학개론,정보론,민간조사학(탐정학)개론,各國탐정업·탐정법&공인탐정(공인탐정법)의明暗/사회분야(탐정·치안·국민안전) 600여편의 칼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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