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원작소설 영화 ‘봇물’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8-02-04 20: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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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유치·관객확보 수월… “창작보다 현실안주” 비판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더 게임’, ‘마지막 선물’, ‘추격자’. 최근 영화관 간판을 장식하고 있는 영화 목록이다. 7일 설을 앞두고 한국영화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동시에 그동안 눈치 채지 못한 몇 가지 공통점이 드러났다. 십중팔구는 원작이나 실화가 있는 영화라는 사실이다.

실화는 영화뿐 아니라 TV드라마에서도 많이 활용돼 왔다. ‘리얼’이 가져오는 충격은 가공에서 느껴지는 감동보다 더 크게 다가온다. 재탕, 3탕을 우려먹는 사극에서부터 몰랐던 역사적 사건을 들춰내는 영화 ‘실미도’까지 다양하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핸드볼 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감동적인 은메달 신화를 이룬 선수들의 투혼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추격자’도 과거 대한민국을 경악케 한 유영철의 연쇄살인 사건이 모티브다.

소설과 만화도 영화의 단골소재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1994년 PC통신에 연재된 작가 유일한씨의 ‘어느날 갑자기’에 수록된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더 게임’ 역시 일본 니타 타츠오의 만화 ‘체인지’를 스크린으로 옮겼다.

이들 원작 영화는 수적 우위에 그치지 않는다. 흥행성적 면에서도 원작과 실화를 모태로 한 영화가 강세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07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지난해 한국영화 순위 톱5를 살펴보면 1위 ‘디워’를 제외한 4편 모두 원작 혹은 실화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 ‘화려한 휴가’, 실화를 소재로 한 ‘그 놈 목소리’, 만화를 원작으로 한 ‘미녀는 괴로워’와 ‘식객’ 등이 지난해 흥행 2~4위를 차지했다.

이는 향후 소설, 연극, 만화 등 연관 장르와 연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영화가 새로운 창작의 창구로서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다. 원작의 인기에 편승 혹은 실화의 리얼리즘에 의존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소재 고갈’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한 현상은 아니다. 지난해 개봉한 한국영화 10편 중 1편만이 손익 분기점을 넘었다.

또 편당 평균 18억여원의 손해를 입었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관객의 요구에 맞춰 영화를 만들다 보니 원작 영화가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다. 마찬가지로 관객들은 개봉되는 영화들에 맞춰 영화를 본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맥락이다.

무엇보다 가장 확실한 이유는 ‘되는 영화를 하겠다’는 안이한 자세 때문이다. 이미 만화를 통해 사랑을 받았거나 소설을 통해 인기를 얻은 작품들을 영화로 옮긴다. 투자자 유치가 수월할 뿐 아니라 일정 수의 관객을 확보할 수 있다.

마케팅이나 홍보 효과도 노린다. 원작의 인기를 강조, 영화도 재미있을 것이라는 유인 문구도 삽입한다. 강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바보’는 ‘3000만 네티즌을 울린 감동’이라는 타이틀로 개봉 전부터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시나리오작가협회는 “만화나 소설을 원작으로 하더라도 시나리오 작업은 시나리오 작가가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원작자가 시나리오까지 마무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지막 선물’의 드라마 작가, ‘바보’의 만화가도 이참에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했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세상에 널려 있는 사실의 더미 속에서 프레임을 만들어내는 것이 창조다. 그러나 요즘 영화들에서는 이조차 사라지고 있는 듯싶다. 만들어진 프레임 속 내용물은 그대로이건만, 프레임만 바꿔 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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