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식보다 미술투자가 좋다>-화상이 되어 보람을 찾아보자

김유진 / / 기사승인 : 2010-03-23 17:54:29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박정수 (작가·미술칼럼니스트) (박정수-작가?미술칼럼니스트)

미술 세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화상

어떤 일로 두 시간 만에 6000만원을 벌 수 있을까? 큰 조직을 거느린 기업이면 가능하겠지만,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로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간혹 외환 딜러나 펀드 매니저들이 그럴 수 있다는 말은 들었다. 미술계에서도 가능할까. 여기에도 매니저가 있으니까 말이다.

아트 매니저는 딜러의 역할까지 함께 수행한다. 우리말로는 화상(畵商)쯤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21세기 유망 직종 조사에서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이 각종 매니저다. 짧은 시간 안에 수천만을 벌 수 있는 직종 중의 하나가 외환 딜러이다. 외환 딜러는 국가간의 환율 변동 폭이 커지고 금융 시장 개방이 현실화되면서 더욱 주목받는 직종이다. 이 직업에는 외환 시장에 대한 신속한 정보 습득과 분석, 고도의 판단력이 필요하다. 지식 측면에서도 국내외 정세 변화는 물론 외국어와 통계학적 분석력과 과감한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아트 매니저나 딜러도 편한 직업은 아니다. 외환 딜러와 유사한 기능과 능력들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작품에 대한 냉철한 분석력과 결단력, 예술을 보는 안목을 충분히 갖춘 딜러가 있다. 고흐, 고갱, 세잔, 피카소 등 세기적 거장들의 작품을 사고팔았던 전설적인 화상 볼라르(Ambroise Vollard, 1866-1939)가 그 사람이다.

원래 법률 공부를 하던 그는 미술에 빠져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29살의 젊은 나이에 화상으로 진로를 바꿔버렸다. 무명작가이던 세잔의 작품을 150점이나 매입하여 전시회를 여는 획기적인 사건을 벌인 것이다. 이때가 1895년의 일이다. 1900년에 접어들면서 5년도 되지 않아 세잔의 작품가가 뛰어오르기 시작해 그는 졸지에 큰 자금을 모은다. 나이 겨우 19살인 피카소를 만난 것이 바로 이때였다. 이런 식으로 무명 화가를 발굴한 다음 작품을 매입하여 전시하고, 이를 되팔아 수많은 화가들에게 도움을 준 사람이다. 그러나 볼라르가 지원?육성하였으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화가의 수가 지원한 화가의 절반에 달한다고 한다.

시스티나성당의 ‘천지창조’를 그린 미켈란젤로에게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후원이 있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나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그라치교회의 벽화인 ‘최후의 만찬’도 당시 밀라노의 군주였던 로도비코 스포르차의 도움이 있었다. 불멸과 고독의 화가 고흐에게도 그의 동생 테오가 있었던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작가가 나서서 비즈니스를 하기 힘들기 때문에 예술계에는 매니저나 딜러가 필요하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의 예술가들은 중세 화가들처럼 귀족의 지원을 받을 수 없고 시장의 논리에 따라 생존을 도모해야 하므로 비즈니스 부분을 맡아줄 역할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화상이 하는 것이다. 화랑이 그런 기능을 하고는 있지만 편의상 겸하고 있는 것이지 원래의 기능은 아니다. 미술계에는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역할이 이 화상이다. 어떻게 보면 화랑주나 큐레이터보다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분야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유진 김유진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