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윤정희 90세때 다시 만나 작업하고 싶다”

차재호 / / 기사승인 : 2010-05-27 18:02:59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윤정희라는 배우 통해 ‘미자’라는 인물 느껴” 극찬 “영화는 각각의 미덕과 가치가 있는 창조물입니다. 올림픽처럼 기록을 재거나 승패를 다툰다는 것에 대해서는 일면 부담이 있습니다.”

영화 ‘시’로 제63회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이창동(56) 감독은 26일 “그래도 칸 영화제는 세계 영화인의 가장 큰 축제”라며 “영화를 평가하고 마케팅하는 데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라고 밝혔다. “칸 영화제가 우리 영화가 세계 관객과 만나는 관문이 됐다.”

‘시’는 칸 공식상영 이후 외신의 호평을 받으며 황금종려상 유력 후보로 거론됐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각본상을 따내며 이 감독의 성가를 확인했다. 2007년 ‘밀양’으로 전도연(37)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이후 3년만에 이번 각본상으로 두번째 기쁨을 맞이했다.

그러나 “내 주변에 아는 사람은 다 아는데 내 작품에 대해 병적으로 소심한 사람이라 허물만 보인다”며 “시간이 지나 관객들의 반응을 들으면 허물이 잊힐 때도 있지만 내 작품에 대한 엄격함이 계속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스스로를 자학하는 스타일이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며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자기도취가 에너지가 될 수 있기에 나도 그런 감정을 갖고 싶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나는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이다.”

영화 ‘시’가 어렵다는 반응이 있다. “익숙한 문법의 영화는 아니지만 정서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영화”라며 “이미 영화를 접한 사람들이 깊숙하게 이해하고 상당한 공감을 해줘 ‘영화 문법이 보편적이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고 답했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시가 노무현(1946~2009)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영화 전체의 구조로 볼 때 주인공인 미자가 죽은 소녀 희진의 마음을 대신해서 쓴 시”라며 “세상의 아름다움이 어디서 오는지 깨닫는 과정을 표현하기 위해 삽입했다”고 전제했다.

이어 “그 시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는 아름다움은 우리 삶의 고통과 어려움, 더러움까지 껴안아야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그러므로 관객이 누군가의 죽음을 떠올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그것을 특정한 사람의 죽음으로 떠올리는 것은 그 시의 의미를 한정할 수 있다”며 “관객 자신이 아는 사람의 죽음을 떠올리기를 바랐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도 “특정한 죽음을 떠올리는 건 관객의 자유이기 때문에 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23일은 노 전 대통령의 1주기였다. 참여정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내기도 한 이 감독은 이날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의 묘를 찾았다. “서거 1주기 당일에는 칸에 있어서 못 갔으니 늦게라도 도리를 하기 위해 봉하마을에 다녀왔다”며 “이 일과 관련해서는 다른 기회 때 이야기하겠다”고 더 이상의 언급을 피했다.

여주인공 ‘미자’를 연기해 호평받은 윤정희(66)와는 “같이 작업을 하면 좋겠지만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면서 “영화를 포함해 창조물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든다기보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짚었다. “때가 오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내가 영화를 오랫동안 해서 윤 선생님이 아흔 살의 나이가 됐을 때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해본 적은 있다”며 웃었다. “우리에게는 많은 시간과 기회가 남아 있는 것 같기 때문에 그런 것을 꿈꿔도 좋을 것 같다.”

윤정희는 여우주연상을 차지한 프랑스의 줄리엣 비노슈(46)와 경쟁관계로 알려졌었다. 이 감독은 “윤 선생님이 눈에 실핏줄이 터질 정도로 강행군을 펼쳤다”며 “상을 받으면 작은 보상이 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했었다”고 아쉬워했다.

‘시’는 칸 영화제 등 해외에서 주목 받았지만, 국내에서는 박한 평가를 받았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주관하는 마스터영화 제작 지원작에서 2차례 고배를 마셨으며 이 과정에서 어느 심사위원은 0점을 주기도 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윤 선생님 같은 분이 15년 만에 선택한 작품이라는 것 자체가 큰 인정이라 생각한다”고 여겼다.

극중 미자와 윤정희는 닮았다. 윤정희의 본명이 극중 이름과 같은 (손)미자이기도 하다. 이 감독은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시’라는 영화의 주인공과 플롯을 떠올리면서 거의 동시에 윤 선생님을 생각했다”며 “미자라는 이름이 일치한 것도 우연”이라고 전했다. “영화를 찍으면서 윤정희라는 배우를 통해 ‘미자라는 인물이 이런 사람이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는 발언은 극찬이었다.

“시는 마음에 관한 영화다. 시가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매체이듯 관객들과 마음으로 만날 수 있는 영화라 믿는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차재호 차재호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