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백자항아리 ‘한자리에’

차재호 / / 기사승인 : 2010-06-23 19:31:36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국립중앙박물관서 테마전 열려… 도자문화 특성·변천사 알려줘 조선시대의 백자 항아리는 흔한 생활도구이면서 장식용 사치품이기도 했다. 특별한 용도의 백자항아리도 있다. ‘태(胎)항아리’와 ‘명기(明器)’ 등이 대표적이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최광식)의 ‘백자항아리-조선의 인(仁)과 예(禮)를 담다’ 테마전에서 이런 항아리들을 구경할 수 있다. 일상생활용 항아리와 함께 태항아리와 명기, 용준(龍樽) 등을 망라해 조선왕실 도자 문화의 특성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전시는 3개 주제로 이뤄진다. 1부는 ‘백자항아리의 특징과 변천’으로 조선시대 백자항아리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다. 2부는 ‘조선왕실의 백자항아리’다. 성리학을 국가이념으로 삼은 조선왕실의 문화와 사고방식이 항아리에 어떻게 반영돼 있는지 소개한다. 3부에서는 서울 지역에서 활발한 발굴조사와 연관된 백자항아리를 새로 선보인다.

특히,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재위 1776~1800)의 친족인 의소세손(1750~1753 정조의 동복형), 문효세자(1782~1786 정조와 의빈 성씨의 아들) 등의 부장품인 명기를 한 자리에 모았다.

명기 구성에 항아리가 포함된 것은 죽은 이가 사후에도 삶을 지속하기 때문에 저장용기인 항아리가 필요하다는 내세관을 반영한 것이다. 명기 내부에서는 여러 물질이 확인됐는데, 분석 결과 화장용 백분과 밀랍인 것으로 밝혀졌다.

태항아리는 왕실 아기의 무병장수와 왕가의 번창을 기원한 것이다. 또 각종 의례 때 사용되는 항아리 가운데 용이 그려진 대형 용준은 왕실의 위엄을 과시하는 용도였다.

이 밖에 서울에서 출토된 백자항아리를 전시, 성격을 재조명했다. 종로나 남대문로 등지에서 발견된 백자항아리는 대부분 관요(官窯)에서 만들어진 고급품이다. 남대문로에서 나온 백자항아리는 푸른빛이 도는 백색 유약이 단아한 분위기와 기품을 드러낸다. 관철동에서 나온 ‘백자 매화 대나무 무늬 항아리’는 파손된 상태지만 국보 219호 백자항아리와 형태와 무늬가 같아 조선 전기 청화백자의 제작 경향을 살펴볼 수 있다.

강경남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를 통해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 속에서 백자항아리의 위치가 어디쯤이었는지를 한 번쯤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백자항아리-조선의 인(仁)과 예(禮)를 담다’는 11월14일까지 상설전시관 3층 백자실에서 계속된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차재호 차재호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