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물 머금은 붓 한자루 한지위에 힘껏 던지다

차재호 / / 기사승인 : 2010-07-11 18:5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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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이정웅, 용산 파크타워서 붓 그림 전시 먹물을 잔뜩 먹은 붓 한 자루가 화폭 위에 던져져 있다. 4방으로 튄 먹물은 생동감과 여백의 미가 더해지면서 동양적 멋을 풍긴다.

특히, 붓털 하나하나까지 극사실로 그려내 실제보다 더 실제 같다. 한지에 유화로 완성한 서양화가 이정웅(47)의 붓 그림이다. 붓을 통해 동양과 서양의 미학을 통합하는 절묘한 조형어법을 구사한다. 그에게 붓은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일 뿐”이다. “먹물의 튐은 힘을 상징하거나 추상적인 표현, 행위적인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붓이 가지고 있는 역할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붓 작업은 2004~2005년 실험한 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빠져들었다. 초기에는 꽃이나 과일 등 정물화를 그렸다. 여기에는 문방 4우도 포함됐다. “문방사우를 주제로 작업을 하던 중 붓의 생명력과 움직임에 매료돼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처음에는 먹물이 튄 형태를 직접 그렸다. 그 역시 진짜 같았지만 “느낌은 약했다.” 그러다 2007년부터 붓을 던져 먹물을 4방으로 퍼지게 만들었다. “생동감이나 힘이 느껴져 작업할수록 흥미롭다”며 웃었다.

그러나 손수 그리는 것보다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먹물이 튀는 모습이 균형이 맞아야 된다”는 것이다. “먹물이 한 쪽으로 쏠리게 되면 버려야 하니까….”

또 “공간이 없으면 답답하다. 내가 생각한대로 느낌대로 안 나오면 힘만 든다. 한 번에 좋은 형태가 나오기도 하지만, 안 나올 때는 죽어라 해도 안 된다. 그래서 포기할 때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붓에 먹물을 듬뿍 먹인 다음 작업을 하는 탓에 “몇 번 하고 나면 몸살이 난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한지 위에 붓을 던진 다음 유화물감으로 붓을 올린다. 물질의 질감까지 선명히 표현한다. 붓만 30여개 정도 갖고 있다. “인사동 필방이나 중국 등지에서 사들였다. 마음에 드는 붓이 있으면 가격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산다.” 개당 35만~65만원짜리들이다.

붓 작업은 작가에게 두 번째 변신이다. “작가로서 평생 작품에 네 번 정도는 변화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관람객이 요구할 수도 있고, 작가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도 있고…. 작가로서 의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사실 변해주는 게 정상이다. 너무 자주 바뀌는 것은 자신의 작품에 책임감이 없는 것 같고, 작품의 변화가 없는 작가는 생각을 하지 않는 작가”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앞으로의 변화가 궁금하다.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작업이 떠오른다”며 “새 작업을 실험하고 있는 중이지만 머리에서 정리가 아직 안 됐다”고 입을 닫았다. “정리가 안 되면 혼란만 생긴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단계다. 조금 추상적으로 갈 수 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한국적인 맛과 멋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다음 전시에서는 “먹물이 튀는 작품은 지양하고 선과 면을 연구해서 선보일 생각”이라며 “내년에는 같은 붓 시리즈지만 선과 면을 다룬 새로운 작품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렸다.

8월8일까지 서울 용산동 파크타워 비컨 갤러리에서 볼 수 있다. 조각가 이재효(45)의 작품도 전시된다. 나무와 못, 돌 등의 집적을 통해 강하면서 독창적인 자연 추상 조각세계를 펼쳐온 작가다. 02-567-1652

<사진설명> 화가 이정웅 작 ‘브러시 BRUSH’ 140×140㎝·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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