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만인보’ 30권을 완간한 이후 처음으로 산문집 ‘나는 격류였다’를 펴낸 시인 고은(77)은 23일 “시는 세상에 널려 있으며 바깥 곳곳에서 떠돌아다닌다”고 밝혔다.
‘나는 격류였다’는 고씨가 삶과 시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담은 책이다.
출생과 함께 부딪혀야 했던 식민지 시대의 기억, 세상을 등진 입산 시절,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 문학을 넘어 회화로까지 이어진 창작물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의 강연 등이 아우러졌다.
고씨의 시론을 축약한 산물이기도 하다. 서울대학교 관악모둠강좌 ‘우리들의 안과 밖-고은의 지평선’, 관악초청강연 ‘처음으로 만난 시’ 등에서 소개한 시론을 다시 정리했다.
제목은 책에 실린 일본 도쿄대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명예교수(72)와의 대담 중에서 “나에게는… 냉철한 인식 논리를 토대로 한 행위가 아니라 거의 저돌적인 투신 행위가 나오기 십상이어서 산문적이기보다 시적이었다… 불교 유식(唯識) 세계에서의 ‘격류’, 그것인지도 모른다”라는 부분에서 따왔다.
고씨는 “내가 태어난 다음해에 어느 영국 평론가가 시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고 말했다”며 “그럼에도 시는 지금까지 잠들고 있지 않다”고 봤다. “수많은 시적인 사건과 함께 시는 여전히 비장한 열매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매년 유력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거명되고 있지만 정작 시인의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것이라 여긴다. “시인은 교사가 아니라 친구”라며 “단, 자기 내부에서 시라는 몸은 가장 높은 이름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씨가 시론에 관한 것 중 최근 관심을 갖고 있는 내용은 ‘언어의 신체화’다. “고양이 꼬리가 뻣뻣하게 떨림을 언어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주인이 돌아왔을 때 하염없이 떨리는 개꼬리의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고 있다.”
“시는 세상을 받아주는 언어가 돼야 한다”며 “이런 고민들이 책에 반영이 됐는지 모르겠다”고 머리를 긁적였다.
고씨가 24년 만에 완간한 만인보는 시로 쓴 인물사전이다. 사람만을 노래한 연작시다.
시인이 유년시절부터 현재까지 만난 특정 인물들을 실명으로 다루고 있다. 이후 ‘만인보’를 집필한다면 더 다룰 인물은 “아주 많다”고 털어놓았다. “‘만인보’는 직무 유기 같은 것”이라며 “문학은 인간 체계 중 지극히 일부만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75~80세에 쓰지만 정작 20년 정도밖에 담보하지 못하는 자서전의 역사는 못마땅하다”고 짚었다. “품이 좀 컸으면 좋겠다”며 “역사의 시간을 100년이 아닌 1000년 또는 2000년으로 크게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또 “내 연보는 관이라는 밀실에 갇혀 있는 것 같다”며 “이승이라는 관 안에 잠겨 있고 싶지만은 않다”는 마음이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다른 무엇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는 것”이라며 “과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삶의 시간은 1000년 이상이 확보돼야 한다”고 믿는다.
고씨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남북이 통일만 되면 조국을 떠나겠다는 발언을 했다. “통일이 언제 될지 알 수 있는 사람, 아니 생명체는 아무도 없다”면서도 “통일이 되면 한반도는 새로운 문명을 맞이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사회가 혼합이 되면 우리가 지향하는 문명은 없어지고 새로운 차원의 문명이 열릴 것”이라며 “그런 상황이 오면 굳이 내가 한반도에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시인은 무식함으로 말하기 때문에 사회학자나 역사학자처럼 말하지 않는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최근 북핵 문제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한반도는 비핵화가 절실히 필요한데 핵 조짐이 보여 큰일”이라며 “(북에) 핵이 있으면 그만큼 통일이 멀어진다. 10년이 걸릴 게 200년이 걸릴 수 있다는 얘기”라고 우려했다.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고씨는 지난달 ‘겨레말큰사전’ 사업이 큰 위기에 처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현재 생명유지는 하고 있다”며 “아시아 전역에는 모국어를 가지고 간 사람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런 것들을 모아 큰 그림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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