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의 눈물’만 보이는 일본

전지명 / / 기사승인 : 2013-08-27 15: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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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명 동국대 겸임교수

▲ 전지명 동국대 겸임교수
그 날은 쌀쌀한 회색 빛 겨울 날씨였다. 지금으로부터 44년 전인 1970년 추운 어느 겨울날, 바르샤바의 희끄무레한 하늘아래 스산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검은 외투에 검은 넥타이를 한 굳은 표정의 한 신사가 유태인 희생자 추념비 앞에 입을 굳게 다문 채, 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경건하게 조의를 표하고 있었다. 고개 숙여 속죄하며 흐느끼는 듯 보이는 그는 마치 차가운 돌바닥 위에 속죄하는 돌부처마냥 앉아 있었다.


그는 불행하게도 사생아로 태어나 아버지의 존재를 몰랐을 뿐 아니라, 그의 어머니마저 또한 사생아로 태어났다.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불행을 딛고 일어서 독일인들과 세계인들에게 존경 받는 정치인으로 우뚝 섰던 그는, 훗날 자신의 어린 시절과 청년시절은 정신적으로 많은 방황을 했던 시기라고 회고했다. 정말 가슴 뭉클하게 한 그는 다름 아닌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이다.


그는 나치 독일에 희생된 영혼들에 사죄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대신해 맨바닥에 무릎 꿇고 어두운 과거사를 속죄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무릎 꿇고 용서 빌었느냐’는 기자 질문에 그는 “나는 독일 역사의 나락에서, 그리고 수백만 희생자를 만든 정신적 굴레에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 할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했을 뿐이다”라고 자기 심경을 토로했다.


그의 이런 참회와 속죄의 장면은 세계인의 가슴에 큰 감동의 충격을 주어 전범국 독일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180 ̊ 확 바꾸게 하는 계기로 화해의 상징이 되었다. 이로써 유럽의 전쟁 피해국들로부터 용서를 받고 동·서독이 대립하던 분열의 시대에 냉전 이데올로기의 사슬을 끊으며 전 후의 폐허로부터 한발 한발 독일을 다시 일어서게 만든 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 후 불행히도 그는 자신의 개인 비서인 ‘기욤’이 동독 간첩이라는 사실이 발각된 후 총리직에서 물러나는 불운을 맞기도 했다.


필자가 여기서 일부러 지난 시절의 빌리 브란트 이야기를 좀 장황하게 꺼내 보는 이유가 있다. 목하(目下) 다른 나라를 공격할 수 있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절차법 착수에 들어간 일본 아베정부의 행보에 역사의 교훈을 상기시켜 보자는 뜻에서 이다.


그런데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일본의 아베신조 총리는 똑같은 54년생 나이에 똑같은 전범국 출신으로 똑같은 처지가 아닌가.


그렇지만 두 사람의 행보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2013년 8월 20일, 옛 나치 강제 수용소의 대표적인 다하우 추모관을 방문한 메르켈 총리는 “이곳 수감자들의 운명을 떠올리며 깊은 슬픔과 부끄러움으로 가득 찬다”라며 전범 피해 사죄와 가해자로서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이에 반하여 2013년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공물을 보내 대리 참배란 술수를 부렸던 아베 총리는 “오늘의 평화와 번영은 전쟁 때 숨진 일본군들의 덕분이라는 것을 잊지 않겠다”라며 자신들의 전범행위를 잊은 듯 가해자로서 속죄는커녕 적반하장 격으로 전범자들을 신격화하고 찬양만 늘어놓아 피해국들의 거센 항의와 분노를 사게 했다.


독일은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이로부터 얻은 역사적 교훈을 후세에 교육하기 위해 제도화 하려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유럽의 중심국가가 되어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독일과는 달리, 일본은 정반대의 길로 막나가고 있어 어두운 그림자가 비치는 듯하다.


개인이건 국가건 과거의 일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은 역사의 수레바퀴에는 후진기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되돌아 볼 수는 있는 법이다. 과거의 치욕스런 비극적인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뼈저린 역사적 교훈을 깊이 새기고 이를 실천하는 길 만이 그런 오욕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고 평화와 번영의 길로 나간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지금 똑같은 두 전범국으로서 독일은 이미 나치 전범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 그리고 나치의 범죄행위를 왜곡하는 자에게는 최고 5년 형이나 벌금형을 주도록 엄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전범 행위에 대한 정당화 뿐 아니라 ‘집단적 자위권’ 행사까지를 내세우고 있는 일본이 나치의 잔재 청산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독일의 이런 모습을 어떻게, 무엇으로 설명 할 수 있을까.


여기서, 시종 ‘악어의 눈물’만 보이는 일본 정부는 앞에 소개된 브란트의 참회와 속죄의 눈물 그리고 메르켈 총리의 슬픔이 결코 ‘악어의 눈물’이나 슬픔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해야만 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 상고사’에서 “역사를 잊는 민족에 미래는 없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 말을 일본도 경건하게 귀담아 들어 주었으면 한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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