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종 국회의원] 이정표가 품은 뜻은

홍문종 / / 기사승인 : 2013-10-15 16: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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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홍문종
▲ 홍문종 국회의원

무심코 야간 산책길에 나섰다가 황급히 발길을 돌려야 했다.



두툼한 옷을 걸치고서야 움츠린 어깨가 펴지는 추위 때문이었다.



전날만 해도 반팔 차림으로 땀을 흘렸는데 하루 차이에 쌀쌀한 가을로 바뀌어 버렸다.



이제는 계절도 쏜살같은 세월의 등을 타고 시공 개념을 없앴나 싶으니 마음까지 추워졌다.



지금의 현실도 하루살이처럼 부유하다 잠시 머무는 한 지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황량한 들판에 내던져진 기분이 들었다.



확실히 시간의 순환이 너무 빨라졌다.



세월은 10대엔 기어가듯, 20대엔 걸어가듯, 30대엔 뛰어가듯, 40대엔 수레 타듯, 50대엔 말 타듯, 60대엔 날 듯 세대별로 체감속도를 달리한다더니 나 역시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자꾸만 흐르는 세월이 아쉽고 나이테를 외면하고 싶다. 다가올 미래를 두려워하는 나약함의 표식이라는 걸 알지만 초조함을 어쩌지 못하겠다.



인간의 삶을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역사에 담아야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막막함이라니.



지금보다 더 주름이 늘고 머리가 희어지고 허리가 구부러지기까지 얼마나 더 시간이 걸릴까 따져보니 그다지 많은 날이 남은 것도 아니었다.



빛바랜 기억을 거꾸로 돌렸더니 인생의 편린들이 다다닥 속살을 드러냈다.



제일 먼저 19대 국회의원 선거, 17, 18대 대통령 선거 당시의 몇 몇 장면이 치열했던 순간의 기억을 퍼 올렸다. 그 다음엔 국회의원이 되어 첫 등원하던 날을 필두로 미국에서 박사학위 받던 날, 결혼하던 날, 대학에 입학하던 날, 초등학교 졸업하던 날, 초등학교 입학하던 날의 기억이 줄줄이 이어졌다. 흑백필름 속 세발자전거와 처녀 같던 어머니도 부활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대한민국 만세와 명성왕후의 최후, 청일전쟁, 임진왜란, 조선개국, 삼국시대, 단군시대 순으로 펼쳐지며 상상력을 가동시켰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비슷한 패턴으로 선명한 기억이 덧입혀졌다. 조선시대가 엊그제 경험과 비슷한 느낌이었다면 단군시대는 대여섯 살 때 정도의 기억에서 고저장단을 맞춰가며 엉뚱하기로 소문난 나의 이름값 체면을 세워주었다.



그런데 오늘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 내게 일어났다.



인생의 이정표가 강렬하고 흥미진진한 충격파를 던지며 나를 향해 걸어왔다.



반드시 해낼 수 있다는 확신 때문에 빛나는 인연을 오늘 만난 것이다.



그 유의미한 아우성이 의미 있는 나의 미래와 겹치는 순간,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 되었다.



냉기에 휩싸인 거리를 걸으며 뜨겁게 달아오르는 가슴을 진정시켜야 할 만큼 벅찬 희열이 온 몸을 적셔왔다.



국회의원이 처음 당선됐을 때도 뛸 듯이 기쁘거나 들뜬 모습을 보이지 않던 나로서는 의외의 경험이었다.
생각했다.



빠른 세월에 내몰리거나, 지나간 세월을 한탄하거나, 얼마 남지 않은 세월을 아쉬워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최소한 모든 게 헛되다 한들, 신의 영역이 아닌 세상에서 만큼은 최소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삶의 이정표를 세우고 그 길을 가고 싶다. 먼 훗날 세월의 속도를 언급해야 하는 순간일 때 떳떳하게 스스로를 평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바람이 차지만 견딜만 하고 어둡긴 하지만 점점 밝아오는 희망이 있기에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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