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지켜보자

이기문 / / 기사승인 : 2013-12-23 14:4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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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문 변호사
▲ 이기문 변호사
박근혜 대통령은 유유자적하게 영국의 엘리자베스여왕을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황금마차를 함께 타고 버킹검 궁으로 향하는 사진이 국내 언론매체의 일면기사로 실렸다. 그러나 그 순간 정홍원 국무총리는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통진당) 해산심판 청구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하고, 제출했다.

통진당에 대한 해산심판 청구 이유는 ‘헌법의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의 수호’였다. 통진당의 강령 등 당의 설립 목적과 일부 활동이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는 것이었다. 헌법가치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하는 경제질서 및 사법권의 독립을 보장하는 정치제제를 말한다.(1990. 4. 2. 89헌가 113호) 이러한 의미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과연 통진당이 위배했는가가 이번 정당해산 심판 과정에서 논의가 될 쟁점들이 될 것이다.

그런데 통진당 해산심판 청구 시점이 국정원 개혁특위와 맞물리면서 정부가 오해 아닌 오해를 받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사실 국정원의 선거개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싸웠던 김대중 후보, 그도 중앙정보부의 선거개입공작으로 낙선 경험을 했고, 대선 때마다 국가정보기관은 대선공작에 나섰다. 13대 때에는 지역감정에 불을 질러 영남 표를 결집시키는 공작을 통해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었다. 광주 유세 때 폭력 난동이 바로 그것이다.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일명 용팔이 사건)도 정보부였다. 14대 때 국가정보기관인 안기부는 이선실 간첩사건을 터뜨려 김영삼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 그리고 15대 대통령 선거 때에는 권영해의 안기부가 북한군에 총격을 유도하는 이른바 총풍 사건을 공작했었다. 하지만 15대 대선은 실패했고, 이회창 후보는 낙선했다. 이때 지역감정을 조작했던 초원복국집 사건이 터졌으나, 국민들은 이에 속지 않았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퇴임 전에 이루어진 대선 때에는 국가정보기관의 선거개입이 사라졌고 순탄하게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리고 이명박대통령 시절의 국가 정보기관장인 원세훈은 단순한 댓글 달기 차원이 아니라, 문재인 후보와 야권을 종북으로 낙인 찍기 위하여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유출하여 변조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서해 북방한계선을 헌상한 노무현과 그 무리’로 낙인을 찍고, 문재인 후보를 노무현의 일당으로 낙인을 찍어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연출을 감행했다. 대화록을 유출, 발췌, 변조한 것이었다.

국정원의 댓글 사건이 폭로되기 시작했다. 이를 덮기 위한 새누리당의 권영세 상황실장의 비상계획이 실행에 옮겨졌다. 김무성 의원은 대선 이틀 전 부산 지원유세에서 ‘피를 토하는 심정’이라면서 자신의 심경을 밝히고, 누군가 전해준 남북정상회담의 대화록의 일부 내용을 공개를 감행했다. 그리고 투표장으로 향하는 중도 층의 국민들은 노무현의 후계자인 문재인 후보를 찍는데 주저했고, 결과는 박근혜후보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그리고 국가정보기관의 댓글 공작에 대하여 이명박의 검찰총장이었던 채동욱이 여기에 강한 메스를 가했다. 국정원과 경찰이 없애버린 증거들을 찾아내고, 복원시키고, 마침내 원세훈과 김용판을 기소하는 성과를 가져오게 만들었다. 이에 분노한 박근혜대통령은, 즉시로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생활을 문제 삼아 채동욱 총장을 검찰 총수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만들었다. 자신이 치룬 선거의 정당성에 의문을 가져오게 만든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남재준 국정원장은 대화록 발췌록과 전문을 공개되기도 했다. 민주당의 문제제기를 ‘선거불복’으로 몰아가는 형세를 취했다.

그리고 이러한 때에 여론이 다시 악화되기 시작하면서 정부는 통진당 해산이라는 강수를 두었다. 헌법재판소가 물론 정당해산에 대하여 심판을 내리겠지만, 국내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대통령은 유유자적하게 외국을 국빈자격으로 방문하면서, 국내정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듯이 대한민국의 국가원수로서 활동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조금은 이례적이다.

판단이야 헌재가 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당 활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당해산의 청구 시점이 왜 하필이면 지방선거를 앞 둔 시점이냐 하는 것이다. 법무부가 “저명 헌법 교수와 전직 헌법재판관 자문 결과 모두 심판 청구 필요성에 공감했다”고 밝힌 대목도 그렇다. 아무리 자기네 입맛에 맞는 전문가들만 골라서 자문을 했다고 해도 이런 민감한 사안에 대해 ‘모두 공감했다’고 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법조계의 다양한 견해를 외면한 ‘외눈박이’ 자문은 스스로를 속이고 전문가들을 속이고 국민을 속이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정부는 진보당 해산되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북한식 사회주의’를 거론했었다. 그런데 법무부가 주장하는 ‘모두 공감’이야말로 ‘북한식 100% 찬성 선거’를 연상케 했다는 점이다.
정부가 정당해산 심판 청구라는 승부수를 들고 나온 것은 ‘이석기 의원 사건’으로 진보당에 대한 국민 여론이 악화된 것을 호기로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과 진보당의 연계가 확실히 증명된 것도 아니고, 사법부의 판단도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서는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진보당 해산에는 서둘러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도 자가당착이다.

“진보당이 선거제도와 의회제도, 정당제도를 부정하는 정당”이라는 정부 주장 역시 진보당이 선거를 통해 원내에 한 석이라도 더 진출시키려 안간힘을 써온 사실을 고려하면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의 과거 역사를 돌아보면 권력의 폭력적 광기가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외피를 쓰고 나타날 때가 가장 위험하다. 유신체제는 가장 생생한 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우리는 지금 박근혜 정부에서 다시 목도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의 이번 조처는 대선 기간 이정희 진보당 후보의 날선 공격을 받았던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적 감정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정부의 진보당 해산 청구의 당부는 이제 헌법재판소의 몫이 됐다. 헌법 재판소가 어떠한 결정을 내릴 것인지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재판소의 재판을 지켜보는 일도 역사의 한 과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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