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탐정을 난국 타개에 활용한 세계적 교훈

김종식 / / 기사승인 : 2014-05-06 1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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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식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
▲ 김종식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
우리나라는 아직 민간조사원(사립탐정)이 공인되어 있지 않지만, 세계적으로 볼 때 탐정산업이 발전해 오는 과정에서 초기에는 개인의 행적이나 평판 등 사적영역의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일이 탐정의 주역할이었으나 오늘날 대다수 외국의 탐정들은 변호사 업무를 조력하거나 국민 모두에게 피해를 안겨주는 보험금 부당청구사례탐지, 도피자 및 해외은닉 재산 추적, 공익침해사범고발 등 대중적 측면의 일에 관심을 갖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일부 나라에서는 국가적 쟁점이나 사회적 혼란이 있을 때 국가기관 스스로가 탐정에게 민심이나 특정정보의 수집을 의뢰하기도 한다.

이는 정형화된 민정(民情)기관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시도일 뿐만 아니라, 탐정(민간)의 전문성과 문제의식이 결코 공조직에 뒤지지 않음을 시사해 주는 것으로, 그 결과는 난국타개에 크게 기여된 바 대표적인 몇 사례를 살펴보면서 탐정을 활용한 사람들의 지혜와 탐정의 유용성을 함께 음미해 보고자 한다.

1500~1800년대 영국은 경제적 불안과 사회적 혼란이 지속된 가운데 치안대처능력이 큰 문제로 제기되자 만연해 있던 기존 보안관의 무능과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지역별로 한시적인 치안판사직을 신설하였는데, 1748년 런던 보스트리트의 치안판사로 임명된 H.필딩(1707~54)법관은 유능한 사립탐정을 선발하여 세계 최초의 공립탐정기관으로 평가되는 '보스트리트러너'라는 소수의 정예 탐정조직을 만들어 보안관과 관련된 각종 범죄의 정보 및 증거를 수집케 특명함으로써 공직 적폐(積弊)해소와 민생안정에 크게 기여한 역사가 있다.

이후 '보스트리트러너'는 뛰어난 정보력을 평가받아 1829년 내무부장관 로보트 필이 창설한 스코틀랜드야드(런던경찰국)의 치안조직으로 흡수되는 명예를 얻기도 하였다.

또한 1966부터 1986까지 21년 동안 필리핀을 통치해오는 동안 부패와 민주정치에 대한 탄압으로 국민의 저항을 받다 권좌에서 쫓겨난 마르코스 대통령이 스위스 은행에 숨겨 두었던 16조원 규모의 비자금도 오랜 기간의 연구로 스위스 금융계의 은밀한 흐름을 꿰뚫고 있던 호주의 한 사립탐정이 필리핀 정부의 의뢰로 입수한 정보가 단서가 되어 세상에 알려졌다는 공지의 일화는 탐정의 면밀함을 세계에 입증한 일이었다.

또 1998년 미국 클린턴 대통령과 그의 여비서 르윈스키와의 스캔들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특별검사 케네스 스타도 기존 검ㆍ경 시스템이 아닌 사립탐정에게 증거수집을 의뢰하여 얻은 결정적 단서로 클린턴에 대한 탄핵 소추에 활용했다는 얘기는 탐정의 역량이 경우에 따라 수사기관을 능가할 수도 있음을 대변해 주는 좋은 사례라 하겠다. 이외에도 탐정의 두드러진 공적(公的) 기여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를 통해 드러난 우리시회의 총체적 부실과 허점을 보면서 조선시대에 임금의 특명을 받아 지방관리와 토호세력의 유착 등 탐욕과 백성의 질고(疾苦)를 비밀리에 탐문하고 관찰하여 임금에게 직보함으로써 무능하고 부패한 관리를 가차 없이 징벌케 한 암행어사 제도나 세계적 명탐정을 새삼 그리워하는 국민의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물론 현재에도 다양한 감사ㆍ감찰ㆍ수사ㆍ정보기관이 존재하면서 제각기 맡은 소임을 다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복잡ㆍ다양한 사회구조 속에서 공식적인 시스템만으로 적폐된 문제점을 직감하거나 추적해 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4월의 참사를 통해 우리는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난국타개에 사립탐정까지 활용하여 민정(民情)기능을 보완해온 선진 외국의 간절함과 유연함을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여길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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