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환 칼럼] 홍길동을 홍길동으로 부르게 하라

이영환 / / 기사승인 : 2014-05-22 15:2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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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환 건국대 교수 한국은 이상한 규제 왕국이다.

온갖 종류의 규제를 통해 국내 기업의 발목을 잡는 동안 외국기업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재도 없이 활동이 가능하게 해준다. 가장 비근한 예로 공인인증서와 액티브엑스는 우리 전자상거래 기업의 뒷목을 오랫동안 잡고 있었다. 국내 기업들은 고객들에게 공인인증서 등의 인증을 받지 않으면 금융거래를 할 수 없었다.

같은 기간 동안 페이스북이나 아마존닷컴 등 한국에 지사가 없는 외국기업들은 인증 없이도 얼마든지 상거래를 할 수 있었다. (사실 외국기업은 규제의 대상이 되는 한국지사를 만들 이유가 전혀 없다.)
인터넷에는 국경이 없다. 이런 당연한 사실에도 한국내의 기업이라는 이유로 해서 한국 기업들은 법적인 규제에 의해 고객들에게 공인인증서를 요구했다.

문제는 공인인증서를 가지고 있을 리도 없고 원한다고 해도 발급 받을 수도 없는 인터넷 상의 외국인들은 법에 의해서 구매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었다는 점이다.

인터넷 상에서 이러한 자국기업 역차별 현상이 십 년 이상 벌어졌다. 그 와중에 박근혜대통령이 지난 3월 이에 대해 언급하고 난 후 역차별이 겨우 해소되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규제개혁을 외치는 것은 관례다. 김영삼 대통령의 규제실명제, 김대중대통령의 규제등록제, 노무현 대통령의 규제 총량제, 이명박 대통령의 전봇대 뽑기 등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름을 바꾸어 나타나는 규제개혁은 박근혜 정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를 암덩어리와 원수 등으로 비유하며 규제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를 의심하지 않아도 규제개혁은 또다시 실패할 것으로 예측하게 된다. 그 이유는 과거 정권들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규제는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나기만 했기 때문이다.

MBC보도에 의하면 노무현정권에서는 규제는 정권초기 7827건에서 8084건으로 늘어났고 이명박정권에서는 5186건의 규제가 1만3147건으로 무려 2.5배이상 늘어났다.

두 정권 모두 규제개혁이 집권초기 주요 국정 목표중의 하나였지만 집권말기에는 오히려 건수가 증가한 것이다.

어쨌거나 대통령이 규제개혁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보이는 중에도 전혀 의도를 알 수 없는 규제가 자꾸 새로 생기는 것은 불가사의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홍길동’을 ‘홍길동’이라고 부르지도 말고 저장하지도 말고 수집하지도 말고 제공하지도 말라는 법이 시행된다. 8월부터 시행될 ‘개정 개인정보보호법’이 그것이다. 뉴스에 따르면 주민번호의 수집 및 제공이 전면 금지된다.

이런 뉴스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원인을 성찰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야 할 때 성찰은커녕 규제만 만들었다.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현상을 적당히 덮기 위한 미봉책을 짜깁기하니 규제만 만들어진다.

주민번호라는 것은 개인을 식별할 수 있게 해주는 번호다. 국민 각 개인에게 부여되어 서울 사는 ‘홍길동’과 대구 사는 ‘홍길동’을 식별할 수 있게 해주는 번호 이외에는 더 이상도 더 이하도 아니다.

사실 대구 사는 홍길동이 서울 사는 홍길동과 다르다는 것을 식별하게 하려면 주민번호로 구분하는 게 최선이고 이를 주고 받고 원한다면 저장하고 수집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가 법으로 수집하라거나 수집하지 말라고 제한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주민번호의 사용이 제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나름 다소 오해가 섞인 이유가 있다.
주민번호의 유출 때문에 개인정보가 덩달아 유출되는 현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민번호의 유출로 인해 많은 다른 정보도 쉽게 도둑질을 당한다는 현상이 주민번호의 잘못은 아니다.

그 동안 주민번호는 개인 식별번호라는 초기 의도와는 달리 개인인증을 위해 오-남용되었다. 인증을 위해 주민번호 뒷번호를 쳐 넣으라는 것이 한 예다. 대구 사는 홍길동을 다른 사람들과 식별할 수 있게 만든 주민번호를 “내가 바로 홍길동”이라는 사실을 인증하는 번호로 오-남용 되는 것은 교육이나 계몽을 통해 고쳐야 할 일이지 주민번호를 쓰지 말라고 억지로 강제할 일이 아니다.

이렇듯 몰이해에 의한 오-남용으로 인해 생긴 법인데 이를 시행하는 시행령은 국민의 고통을 최대화하기 위해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기괴하기까지 하다.

이 법의 시행을 위해 ‘아이핀’을 오프라인에까지 사용하게 한단다. 따라서 그 이름을 ‘마이핀’으로 이름 짓고 사용하게 할 것이라고 한다. 사실 아이핀은 개인인증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굳이 반대 할 만큼 나쁜 시스템은 아니지만 개인식별에는 절대로 필요 없는 제도다.

‘마이핀’이라는 것을 주민번호 대용으로 개인 식별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은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현장 전문가가 아닌 행정고시 패스한 공무원이 탁상 위에서 배운 지식으로 전문가인 척 할 때 얼마나 큰 참사가 일어나는지 이미 보았다.

주민번호를 전면금지하고 ‘마이핀’을 보급하는 것에 대해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필자의 추측이다. 제발 이제 행정전문가들은 본연의 행정업무로 돌아가고 보안 IT전문가들에게 전문영역을 맡겨야 한다.

결론적으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제발 ‘홍길동’을 ‘홍길동’으로 부르게 하라. 이를 막는 것은 국가적으로 엄청난 경제적인 손실을 초래할 뿐이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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