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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환 건국대 교수 |
국수는 밀가루로 만들고 국시는 밀가리로 맹근다. 밀가루는 봉지에 넣어 팔고 밀가리는 봉다리에 넣어 판다.
재미는 있지만 필자에게는 국수가 국시와 어떻게 다른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맛있는 점심이 관심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국수’가 옳으냐 ‘국시’가 옳으냐 가지고 논쟁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월드컵에서 참담한 결과를 낸 국가대표팀 홍명보 감독이 도마 위에 올랐다. 경질이냐 유임이냐 설왕설래 끝에 재임으로 결정이 났다. 월드컵까지 1년 미만인 상황에서 홍 감독이 할 수 있는 작전은 개인기에 의존하는 것 이외에는 별로 뾰족한 것이 없었을 것이다. 장기적인 전략은 불가능하고 단기적인 전술만을 펼쳐볼 수 있을 뿐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축구협회와 국민은 홍 감독에게 ‘신의 한 수’ 전술과 용병술을 기대했다. 홍 감독은 짧은 시간에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책을 구사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이런 상황을 생각할 때 홍 감독의 유임은 상식적인 당연한 결정이다.
홍 감독이 책임질 부분도 있겠지만 짧은 시간 동안 ‘신의 한 수’를 구사하기를 바란 협회가 잘못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알고 싶은 것은 ‘누가 책임질까?’에 답이 아니고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한 원인에 대한 분석과 향후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한 종합적이고 영구적인 대책이다. ‘누가 책임질까?’는 알고 싶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월드컵 참사’라는 식의 논조에 반대한다. 지금은 책임지는 것이 필요한 때가 아니고 원인 분석과 대책이 더 중요하다. 물론 원인 분석을 했더니 누군가가 월드컵 실패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책임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은 정밀한 원인분석과 향후 대책이 더 필요한 때다.
이와 비슷하지만 다소 다른 경우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질되었던 정홍원 총리의 경우다. 정홍원 총리가 세월호 참사에 책임을 경질되었다가 다시 돌아왔다.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은 예수님밖에 없고 경질되었다가 돌아온 사람은 역사상 정 총리밖에 없다.
사실 필자는 정홍원씨가 돌아와서 총리가 되었건 문창극씨가 총리가 되었건 전혀 관심이 없다. 알고 싶은 것은 단 하나, 세월호에 대한 재발 방지 방안이다. 총리가 사퇴하고 개각이 된다고 세월호 원인에 대한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황당하게도 '민심 수습용'이라는 정치 공학적 방안으로 세월호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미래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이 경질됐다. 장관의 목숨이 화풀이 개각용으로 전락된 현실에 한숨만 나올 뿐이다.
더 갑갑한 것은 세월호 국정조사특위가 열렸는데 야당의 김광진 의원은 녹취록에 없는 대통령 관련 내용을 마치 있는 것처럼 조작을 해서 질의를 했다. 그게 울고 싶은 아이 뺨 때려준 격이 됐다. 김광진 의원이 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조특위는 더 이상 진행을 못하고 있다. 여당은 김광진 의원이 국조특위에서 사퇴하라는 것이다. 사과까지 한 내용을 가지고 김광진 의원이 특위에서 사퇴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나?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을 누구나 다 알지만 그래도 파행을 하고 있다. 다소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아무런 의미도 없이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국수’와 ‘국시’의 차이점을 가지고 싸우느라고 점심 먹기를 거부하는 중이다.
세월호는 사회전체의 국가 전반에 걸쳐있는 총체적인 비리에 의해 난파했다. 누적되어온 부패, 부정, 비리, 잘못된 관행 등에 부도덕한 기업주의 탐욕이 더해지고 공무원의 태만과 안일과 무능이 총체적으로 얼크러져 참사를 불렀다.
지금 세월호 참사의 재발 방지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전국민적인 합의가 필요한 부패구조 척결 방책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여당의 정치공학적인 꼼수가 아니고 녹취록의 내용까지 조작하며 구사하고 있는 야당의 대통령 흠집내기는 더더욱 아니라는 말이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역사상 가장 큰 각성제를 주사했다. 이 각성제를 통해서 우리 사회구석구석 쌓인 부패를 척결해 버리기에 가장 좋은 기회다. 세월호 참사는 앞으로 영원히 역사에 남겨서 기억되어야 할 것이고 다시는 재발해서는 안 된다. 제발 국회 국정조사특위는 세월만 보내지 말고 국가적인 부패구조 척결에 대한 종합적이고 영구적인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도록 노력하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국민들은 국회에서 벌어지는 국수와 국시 논쟁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해둔다. 국회의원들은 국정조사 특위의 목적이 무엇인지 제발 기억 좀 하시기를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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