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이영환 건국대 교수 |
연세 드신 분들은 지금의 남대문 수입상가가 과거에 도깨비 시장이라고 불린 것을 기억하실 것이다. 거의 모든 물품 수입이 금지되어 있던 시절 엄청난 양의 불법 수입 물품이 도깨비 시장을 거쳐서 판매되었다.
이 시장은 존재 자체가 단속대상이었는데 단속반만 나타나면 그 많은 물품이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뜻에서 도깨비 시장이라고 불리었다.
이 도깨비 시장에서는 수입자유화가 될 때까지 수백 원짜리 소모품에서 수천만 원짜리 가구까지 거래되었다. 정부는 한국동란 이후 80년대 중반까지 삼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속하고 또 단속했고 상인들을 잡아가두고 또 가두었다. 그럼에도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없는 게 없다고 할 정도로 더 번성하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수입 자유화 이후 모습을 바꾸고 수입물품상가로 자리를 잡게 된다. 지금은 많은 분들이 추억 삼아 혹은 취미 삼아 가보는 시장으로 바뀌었다.
이와 비슷한 것이 개인 정보 시장이다. 개인 정보라는 데이터는 암시장에서 도깨비처럼 거래가 된다. 그 규모가 얼마나 되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 일반인들은 거의 일년에 한 두 번 터지는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통해서만 그런 게 있구나 하고 알게 된다. 정부는 개인 정보 유출 사고가 날 때마다 나름 특단의 대책을 내놓는다. 그런데 아무리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도 없어지지 않고 잊어버릴 때쯤 재발하는 것이 바로 개인 정보 유출 사고다.
지난 1월 무려 1억4백만 건에 달하는 개인 정보가 유출되었을 때 정부는 텔레마케팅 회사의 영업을 금지시킨다는 극약처방을 내놓으면서 대처했다. 도깨비시장에 외제 자전거가 많이 팔리니 자전거 타기를 금지시키는 격이다. 자전거 타기를 금지하면 도깨비 시장이 없어질까? 이런 식의 규제가 겨울날 언 발에 오줌 누기 미봉책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터인데 오죽 답답하면 이런 처방을 내놓을까. 이렇게 해서라도 개인 정보 유출을 막겠다는 공무원에게 필자는 살짝 연민의 감정까지도 갖게 된다.
수요가 있고 그 수요가 충분한 이익을 제공하는데 어떻게 시장이 없어지기를 바래는가 말이다. 개인 정보 유출 문제에 대한 해답은 미봉책이 아니고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즉, 개인 정보 거래는 양성화하고 거래되도록 해야 한다. 도깨비 시장에 대한 해답은 불법으로 규정하고 단속하는 것이 아니고 수입을 자유화하는 것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개인 정보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유통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장 시장친화적 해답이다.
다소 다른 이야기지만 공공데이터제공분쟁조정위원회라는 기관이 있다. 이 위원회는 데이터나 정보를 제공하는 공공기관과 이를 사용하는 시민이나 기업 사이에 어떤 이유로든 분쟁이 생기면 이를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필자 소견으로는 이 위원회는 공공정보 제공에 관한 한 국가적으로 매우 유익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필자는 이 위원회에서 조정위원으로 봉사하고 있다.)
지난 봄 이 위원회에 내비게이션 앱 서비스 제공 업체인 “김기사”가 분쟁 조정 신청을 했다. 이 업체는 도로이정표 데이터(이미지와 위치정보)를 수작업으로 입력하고 있었는데 그 정보가 자주 바뀌는 까닭에 수작업을 자주 반복해야 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중 국토부 웹 사이트에서 자신들이 힘들게 수작업하는 것과 똑같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발견하고 정보 공개를 요청을 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도로이정표를 바꾸는 권한이 있는데 이정표가 바뀌면 지자체는 그 정보를 입력하게 되고 국토부에서는 이 자료를 수집하여 제공하는 중이다. 국토부의 수집된 자료를 받을 수 있다면 김기사는 자신들의 수작업이 필요 없어지는 것이다.
이에 국토부는 도로이정표 데이터는 지자체에 소유권이 있고 국토부는 요청된 데이터는 국토부의 소유가 아니고 지자체로부터 제공받은 데이터를 단순 전달만 한다는 이유로 공개를 거절하고 업체에는 각 지자체와 접촉하여 데이터를 받을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 업체는 전국 250여개의 지자체와 일일이 담당자를 찾아서 계약하고 데이터를 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위원회에 분쟁조정을 신청을 했다. 위원회는 이 안건에 대해 심의한 결과 국가 기관은 데이터의 소유권이 없으므로 국토부에 데이터를 공개해도 된다는 유권해석과 함께 문제의 데이터를 김기사 등의 내비게이션 업체에게 공개하도록 권고했다. 김기사는 원하던 대로 유권해석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국내에 있는 정보만을 필요로 하는 경우지만 만일 외국에서 같은 종류의 데이터를 받아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비게이션 앱은 데이터만 받을 수 있다면 어느 나라든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다. 현재는 도로이정표 데이터 등을 수작업으로 해야 하므로 해외진출이 무척 어렵다. 하지만 만일 각국의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업데이트되는 데이터를 받을 수만 있다면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점을 착안해 볼 수 있다. 만일 누군가가 도로이정표 데이터를 수집하고 판매한다면 좋은 비즈니스가 되지 않을까? 전세계의 도로이정표가 유통되도록 한다면 국내 내비게이션 업체가 해외로 쉽게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줄 수 있다.
미래부가 구상하고 있는 데이터거래소는 데이터의 거래를 통해서 개인정보 유통을 양성화하고 데이터 불법 유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한 데이터거래소를 통해서 세계 데이터 시장을 선점하는 일석이조를 이루기를 기대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데이터거래소가 김기사와 같은 벤처 업체들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발판을 제공하여 차세대 먹거리 창출의 계기가 되도록 할 수 있게 되는데 미래부의 창조경제에 큰 몫을 하기를 기대한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