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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덕 국회의원 |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제6항에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국가의 책무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가 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사고만 나면 바꾸는 시늉만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또 다시 참사가 되풀이되는 이 지독한 악순환의 고리를 단호히 끊어야 한다. 그것이 남은 자들의 책무이자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 말하고, 고쳐야 할 것은 고쳐야 한다. 안전한 사회, 사람 귀한 줄 아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며칠 전 국정감사가 끝났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국토교통부와 소관 공공기관의 안전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폈다. 여전히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반복되고 있는 안전불감증이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월호 사고 이후 각종 시설물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시설물 안전 상태를 확인할 안전점검 및 정밀안전진단 용역이 정부가 스스로 만든 규정도 위반하면서까지 부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상식에 맞지 않는 낮은 금액으로 발주돼, 전문 인력이 적절하게 투입되지 못하고 장비사용이나 실험도 부실하게 진행될 우려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부터 2014년 8월까지 국토교통부 소속 국토관리사무소가 발주한 총 676건의 ‘안전점검 및 정밀안전진단 용역현황’을 분석한 결과, ‘안전점검 및 정밀안전진단 대가기준(이하 ‘정부대가기준’)’상 적정금액 대비 49.3%라는 낮은 금액으로 발주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실제 낙찰률은 정부대가기준 대비 42.9%에 불과했다. 이를 구체적인 액수로 환산하면, 정부대가기준에 따라 인력ㆍ장비 등 1,231억원이 소요되어야 할 안전점검 및 정밀안전진단을 국토교통부는 607억원에 발주했고, 시설물 안전진단점검 업체는 528억원에 수행한 것이다. 정부대가기준은 시설물별ㆍ규격별 투입인력과 과업 내역을 규정하고 있는 기준이다.
정부대가기준을 100% 맞춰 발주한 안전점검용역은 총 676건 중 101건, 비율로는 14.9%에 불과했다. 문제는 정부대가기준의 반토막도 안되는 수준에서 낙찰이 이루어지다보니 안전점검 및 안전진단에 필요한 전문인력 투입을 아예 줄일 수밖에 없고, 장비 사용이나 실험도 부실하게 진행돼 안전점검에 대한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또한, 최근 5년간 민간업체가 수행한 정밀안전진단 및 정밀점검 1,859건을 평가한 결과, 부실 252건(13.5%), 시정 1,576건(84.8%) 등 평가대상의 98.3%(1,828건)가 제대로 수행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실 진단ㆍ점검 시설물에는 교량, 터널, 댐 등 중요 1종 시설물은 물론 대학병원, 시중은행, 유명호텔, 대기업빌딩 등 다중이용시설 등도 포함돼 있어, 시설물 안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반면 부실 진단점검업체에 대한 행정처분은 지난 2년간 단 15곳에 불과했다. 행정처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민간업체도 스스로 개선하려는 노력들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고, 평가결과 2년 연속 또는 3년 연속 지적받은 업체도 상당수 있었다.
시설물에 대한 안전진단ㆍ안점점검을 하는 이유는 시설물에 대한 안전 확보를 통하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데 있다. 정부가 스스로 만든 안전점검 대가기준조차 따르지 않고, 저가 발주가 관행처럼 계속된다면 부실 점검을 부추기는 것과 다름 아니다. 더구나 민간업체의 부실한 안전진단ㆍ안전점검은 또 다른 붕괴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반복되는 ‘임시방편’적 ‘땜질’식 처방으로는 안전사고를 막을 수 없다. 우리 사회가 보다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생각이 바뀌고 안전에 대한 철학이 바뀌어야 한다. 성장과 속도의 시대에서 사람과 생명이 먼저인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이자 국회의원으로서 매번 반복되는 대형 재난사고를 예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국민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입법 및 정책대안을 마련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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