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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서항 한국해양전략연구소장 |
사실 NPT 검토회의가 구체적 합의문이나 조치의 채택 없이 무위로 끝난 사례는 1980년(제2차), 1990년(제4차), 2005년(제7차)을 포함하여 이번이 4번째이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핵무기 소형화 추진을 포함한 핵개발 진전과 이란 핵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노력이 답보상태를 보이고 있는 상황 등을 감안해 볼 때 이번 검토회의에서의 합의문 채택 실패는 예사롭게 지나쳐 버릴 사안은 결코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검토회의에서 합의문 채택 실패의 주요 원인은 무엇일까? 회의 참가자들과 핵문제 전문가들이 우선적으로 꼽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중동지역 비핵지대(NWFZ) 설립에 대한 당사국 간의 합의 실패이다.
중동지역 비핵지대 설립은 1995년 제5차 검토회의 시 검토회의 절차 강화와 핵비확산을 위한 보편성 증대를 포함한 3개의 결정문과 함께 채택된 결의로서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의 핵비무장화를 겨냥하고 있다. 이 결의는 당시 중동지역 국가들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들이 추구하는 NPT의 무기한 연장을 동의해 주는 대신 얻어낸 성과였으나 그동안 아무런 진전이 없다가 2010년 제8차 회의에서 2012년 이내에 이의 구체적 이행을 위한 회의소집이 합의된 바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도 이후 별다른 진전이 없자 이집트 등 중동지역 국가들은 금번 회의에서 2016년 3월로 명기된 회의 소집의 구체적 일정 확정을 요구했으며 회의에 대한 이스라엘의 사전 동의 필요성을 강조한 미국 등 일부 국가들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자 합의문 채택을 아예 거부한 것이다.
정기적인 검토회의에서 NPT의 3대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비핵국에 대한 핵확산 금지, 기존 핵보유국의 핵무기 감축,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확대 등에 대한 합의문 또는 조치 채택의 실패는 엄격히 보면 NPT가 당분간 아무런 기능을 할 수 없음을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9차 검토회의에서의 합의문 채택 실패는 조약이 추구하는 핵확산 금지 등과 관련하여 국제사회의 ‘실망’(disappointment)을 넘어 ’재앙‘(disaster)이라고까지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 진전, 이란 핵문제 협상의 답보, 핵안전 사고의 빈번 등 핵문제와 관련한 숱한 의제가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문제의 해결에 도움될 수 있는 아무런 조치가 채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합의문 채택의 실패는 핵무기 및 다른 대량살상무기와 관련된 국제협약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어 파장은 더욱 커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핵확산금지와 핵군축 추진 등과 관련된 합의문과 조치의 채택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검토회의에서 부각된 가시적인 성과도 물론 존재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핵무기의 궁극적인 사용금지와 제거를 강조한 이른바 ‘인도주의적 호소’(Humanitarian Pledge)에 대한 공감이다. NPT의 거의 모든 당사국들은 이 호소를 통해 핵무기가 사용될 경우 인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에 동의했으며 이 호소는 또한 핵무기 감축 추진의 새로운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성과 이외에 금번 NPT 검토회의는 아무런 합의문이나 조치의 채택에 실패함으로써 전반적으로 기회를 낭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5년 후에 다가올 제10차 검토회의에서 핵확산금지와 핵무기 감축 등과 관련된 새로운 획기적인 조치를 이끌어 낸다면 금번 회의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로 재평가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5년 후에도 아무런 합의를 하지 못한다면 핵확산과 관련한 더 큰 ‘재앙’과 ‘공포’가 우리 인류를 기다릴 것이다.
출처:JPI PeaceNet(제주평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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