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합의는 개에게나 던져줘라

공희준 / / 기사승인 : 2016-11-08 16: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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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희준 정치컨설턴트
▲ 공희준 정치컨설턴트
“총리 빤스 줄여 놨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세균 국회의장과 장장 13분 동안이나 무려 대면면담씩을 불사하면서 한 언급들은 이렇게 간단히 요약될 수가 있다. 아니, ‘책임총리’라는 헌법에도 존재하지 않는, 우주의 기운 가득할 직책을 신설해 내각을 통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박 대통령 나름으로서는 통 크게 약속했으니 속옷의 치수를 늘려놨다고 이야기해야 더욱더 정확한 표현이 될 듯싶다.

그런데, 정말 그런데 김병준 국민대학교 교수 대신에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총리에 앉히기 위해 수십만 명의 국민들이 쌀쌀한 가을 날씨를 무릅쓴 채 촛불을 들고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는 말인가?

작금의 상황은 손학규 같은 거물급 인사가 재상이 될 수 있게끔 총리 빤쓰의 치수를 크게 늘리는 것이 관건이 아니다. 청와대에서 책임총리를 고려할 용의가 있음을 넌지시 비추자마자 올림픽 100미터 달리기 경기 결승전의 출발선에 선 세계적인 단거리 육상선수 우사인 볼트를 능가하는 놀라운 반응속도를 과시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깜냥과 이미지에 어울리도록 국무총리 빤스를 알록달록하게 총천연색으로 화려하게 물들이는 일 또한 최순실 패거리의 전방위적 국정 농단으로 빚어진 총체적인 국가적 위기의 근본적 해법과는 거리가 멀다.

문제의 본질은 박근혜 대통령의 거취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지체 없이 물러나야 난마처럼 꼬인 시국이 수습될 수 있는 실마리가, 처참하게 무너진 나라의 근간을 다시 세울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사태가 이상한 방향으로 그릇되게 흘러가고 있다. 진보언론 뺨치게 박근혜 대통령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성토해온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부터가 여야 합의를 요란하게 강조하고 나섰다. 마치 박근혜와 문재인과 안철수 세 사람만 통 크게 의기투합하면 모든 국가적 난제들이 술술 풀리리라는 투다.

과연 그럴까? 조중동이 요구하는 ‘여야 합의’는 핵심을 헛짚어도 너무나 크게 헛짚은 소리다. 사실 야당은 박근혜 게이트 정국에서 한 일이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의 실질적 오너인 문재인 전 대표는 벌써 며칠 째 중대결심중이다. 지도자는 결심하는 사람이지, 결심하는 중인 사람이 아님을 그는 모르는 듯하다. 알고서도 일부러 모르쇠하거나. 안철수 의원은 박근혜 정권을 향해 호기롭게 전면전을 선포하고서는 정작 촛불시위는 불참하는 앞뒤 안 맞는 행동을 연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이재명 성남시장 같은 인사들이 싸움의 전면에 선봉장 격으로 포진해 있기는 하지만 현직 지방자치단체장인 까닭에 운신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눈길을 차기 대권주자들로부터 현역 의원이 주축이 된 야당의 지도부로 돌리면 그야말로 가관이자 추태의 극치다. 야당 국회의원들의 관심은 거국중립내각이 구성된 후에 자신에게 돌아올 각료직에 진즉에 가 있는 지 오래다, 설령 몸은 광장과 거리의 국민들 곁에 있을지언정, 실제 마음은 총리실과 장관실의 커다랗고 푹신한 고급 의자 위에 팔자 좋게 널브려져 있는 형국이라고 하겠다.

지지율 상위권에 자리한 야권 대선주자들의 기회주의적 처신과, 국민들이 혹여 대통령은 물론 국회의원까지도 다시 뽑자고 주장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을 야당 현역 금배지들의 복지안동하는 행태를 감안하건대 여야 합의는 일찌감치 도출돼 있는 것과 매한가지다. 국민들은 아마 수일 내에 새누리당, 민주당, 국민의당의 주요 3당 지도부가 환한 얼굴로 모여 거국중립내각 출범을 합의하는 장면을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후의 상황 전개는 안 봐도 비디오다. 조중동 보수언론은 이제 정치는 정치권에 맡기고 차분히 생업에 종사하라며 국민들을 겁박할 테고, 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 등의 주류 진보매체들 역시 내년 12월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이뤄도 충분하다면서 보수진영과의 적당한 타협을 모색하리라. 정치권이 선도하고 언론이 뒤를 받치는 그들만의 출구전략 앞에서 결국 머쓱해지는 것은 박근혜 퇴진을 힘차게 외쳤던 국민들뿐일 터.

하지만 명심하자. 이른바 여야 합의는 권력과 자리 나눠먹기를 위한 기득권 정치세력들끼리의 더러운 야합에 불과함을. 새누리당과의 합의서란 내용적으로는 박근혜 정권에게 바치는 항복 문서에 지나지 않음을. 박근혜 대통령을 당장 끌어내리지 못하면 부패한 수구기득권 세력의 전면적 반격과 잔인한 보복이 머잖아 시작될 것임을.

이건 현실을 모르는 철부지 서생의 허황된 과대망상이 아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총리였던, 책임총리를 넘어 제왕적 총리라고도 부를 수 있었던 오토 폰 비스마르크조차 인사권자인 카이저 빌헬름 2세의 한마디로 총리 관저에서 순순히 보따리를 싸야만 했다. 보오전쟁과 보불전쟁에서 잇따라 승리하고, 독일 통일의 대업을 이룩했으며, 세계 최초로 의료보험 제도를 실시해 근대적 복지국가의 초석을 놓았던 저 유명한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마저도 찍 소리 못하고 단칼에 날아간 것이다. 그게 만인지상 일인지하라는 총리직의 숙명적 한계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을 총리에 임명해도 박근혜 대통령의 눈짓 한 번에 경질될 수 있는 것이 조만간 여야 간 합의 아래 등장할 책임총리의 진정한 실체다.

소녀시대 될 뻔한 여자 연예인들이 수천 명은 될 거라는 시중의 우스갯소리가 있다. “소녀시대 될 뻔”은 연예계 활동에서 유리한 경력으로 작용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알량한 책임총리 될 뻔은 장담하건대 현재로부터 백 년이 지나도 씻을 수 없는 치욕스러운 주홍글씨로 인구에 회자될 것이 분명하다. 왜냐? 희대의 국정 농락에 분노한 우리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적 하야 외에는 그 어떤 합의도 추인해줄 뜻이 없는 이유에서다. 합의는 없다. 아니, 박근혜 게이트의 결론에 대한 범국민적 합의는 이미 확고하고 이뤄졌다. “박근혜 퇴진, 조기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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