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한국정치 (1)

공희준 / 공희준 / 기사승인 : 2016-11-13 11: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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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희준 정치컨설턴트

긴가민가했다. 내가 도널드 트럼프의 제45대 미국 대통령 선거 승리를 조심스럽게 예측한 몇 안 되는 인간들 중에 하나이기는 해도 내로라하는 한미 양국의 지식인과 검증(?)된 선거 전문가들이 힐러리 클린턴의 손쉬운 완승을 한결같이 입을 모아 전망한 까닭에, 요즘 강남에서는 개나 소나 다 간다는 미국 유학은 고사하고 그 흔한 여권조차 아직 만들지 않은 진선진미한 우물 안 개구리인 나로서는 괜히 헛다리를 짚었다가 크게 망신만 당하는 것은 아닌지 몹시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힐러리의 당선을 점친 유명 인사들 가운데 대표적 인물 한 명만 들자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이 있다. 중앙일보가 번역해 게재한 그의 뉴욕 타임스 칼럼 제목은 “그래도 클린턴이 이긴다”였다. 크루그먼이 내심 쓰고 싶은 제목은 “그래도 트럼프가 진다”였을지 모른다. 투표일 당일 아침까지도 클린턴이 이길 가능성이 무려 91퍼센트로 관측되었던 터라 세계적인 경제학자 크루그먼이 비과학적인 희망적 사고에 굴복해 경망스럽게 설레발을 떨었다고 평가하기만은 어렵다.



허나 모든 선거는 투표함을 개봉해봐야 그 결과를 알 수 있고, 결론적으로 트럼프가 이겼다. 말의 자식인지, 소의 자식인지, 아니면 사람의 자식인지 그 정체를 도저히 종잡기 힘든 막말의 대가에, 인격 파탄자에, 천하의 지저분한 난봉꾼 호색한으로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를 위시한 미국의 주류 언론이 일치단결해 묘사한 트럼프는 승률 9프로의 절대적으로 불리한 판세를 앞으로 인구에 두고두고 회자될 기념비적인 대역전극으로 어떻게 반전시켰을까? 정답은 CNN 홈페이지에 큼지막하게 뚜렷이 잘 나와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로부터 “Clinton News Network”라고 비난을 살 정도로 극심한 편파왜곡 방송을 일삼으며 시쳇말로 빤쓰까지 다 벗고서 클린턴의 당선을 위해 뛰었던 그 CNN 말이다.



“Trump’s win is a stunning repudiation of political elites.”



조악한 내 영어 실력을 전부 동원해 우리말로 옮겨보자면 “트럼프의 승리는 정치 엘리트에 대한 전면적 거부”쯤으로 의역이 될 게다. 힐러리 클린턴으로 상징되는 기성 지배계급을 향한 미국 유권자들의 깊고 뜨거운 분노가 트럼프를 차기 백악관 주인으로 예약시켰다는 뜻이다.



숨 고르기 차원에서 미국이라는 나라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잠시 가져보자. 미국은 세 가지 핵심적 열쇠말로 규정될 수가 있다. 첫 번째는 변화(Change)다. 두 번째는 위대함이다(Greatness).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정의(Justice)다. 변화는 역동성(Energy)과 이어지고, 위대함은 강력함(Power)과 결부되며, 정의는 법과 질서(Law and Order)의 또 다른 표현이다.



사실 미국의 핵심적 키워드는 전성기 로마의 국가적 목표와 거의 흡사하다. 왜냐? 미국의 독립전쟁을 이끌고 국가의 탄생 작업을 주도한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은 로마를 이상적 모델로 삼아 이 미래의 초강대국의 뼈대를 설계하고 근간을 기획했기 때문이다. 단적인 사례로 미국의 국회의사당을 가리키는 캐피톨(Capitol)은 고대 로마의 카피톨리움(Capitolium) 언덕에서 따온 명칭이다.



트럼프는 방금 언급한 세 가지 핵심적 열쇳말들 중 변화와 위대함 두 개를 자신의 무기로 선점했다. 반면에 힐러리는 아무것도 자기의 자산으로 확보하지 못했다. 나쁜 남자 트럼프는 물론이려니와 악녀 힐러리 또한 정의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던 탓이다.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 모두 철두철미 네거티브 전략으로 일관한 요번 미국 대선 캠페인을 보라. 트럼프는 클린턴이 얼마나 자주 법률을 어겼는지를 까발리기에 바빴고, 클린턴은 트럼프가 얼마나 심각하게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했는지를 들춰내는 일에 골몰했다. 그러므로 최종 점수는 2 : 0, 트럼프의 압승이었다. 3전 2승제의 싸움에서 트럼프는 두 판을 이겼고, 나머지 한 판은 싱거운 무승부였다.



미국 민중의 분노는 미국의 부유하고 힘센 엘리트들이, 그들이 부시 가문 부류처럼 공화당 소속의 보수 엘리트이든, 클린턴 부부 같이 민주당에 몸담아온 진보 엘리트이든 미국을 미국답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3대 가치들 가운데에서 단 하나도 너무나 오랫동안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한마디로 트럼프가 좋아서 트럼프를 찍은 것이 아니라, 클린턴이 싫어서 트럼프를 찍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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