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은폐와 탄압 실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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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승희 영암군수(왼 쪽부터 두 번째)), 위안부 유족 가정 방문 / 영암군 제공 |
이번 자료는 1937년 중일전쟁 이후 1938년에 발생한 사건으로, 일본군 위안부 동원과 관련된 소문을 퍼뜨린 혐의로 지역 주민들이 처벌받은 사실을 담고 있다. 이 판결문은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기록원(정부기록보존소)이 소장하고 있던 원본 판결문과 번역본 등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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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명심씨가 1938년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체포돼 육군형법 위반으로 각각 금고 4개월과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판결문 |
영암 지역, ‘부녀자 징발 소문’으로 2명 실형
1938년, 영암군 도포면 수산리에 거주하는 영막동씨는 덕진면 장선리 송명심씨의 집에서“황군의 위문을 위해 12세 이상 40세 이하의 처녀와 과부를 모집해 만주로 보내기 때문에 금년 농번기 이후에는 결혼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며칠 후 밭에서 귀가한 송명심씨는 마을 구장이 방문해 부녀자 수를 조사하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조사 명단에 자신의 딸(당시 15세)이 포함된 것을 확인한 후 그는 조사를 지시한 이를 찾아가“영막동에게 황군의 위문을 위해 12세 이상 40세 이하의 처녀와 과부를 모집해 만주로 보낸다고 들었는데 구장의 조사도 이를 위한 것이냐?. 그런데 내 딸은 체구가 왜소해 10세라고 해도 될 정도인데, 왜 명단에 넣었느냐? 들으니 모두 위안부로 보내진다는데 사실인가?” 라고 항의했다.
이 항의가 유언비어 유포라는 혐의로 이어져 영막동 및 송영심씨는 체포돼 육군형법 위반으로 각각 금고 4개월과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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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운선씨가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육군 형법 위반 혐의로 금고 6월 집행유예 3년을 처벌 받은 판결문 자료 이미지 / 영암군 제공 |
나주 방면, ‘황군 위문 처녀 모집 소문’
같은 해, 도포면 성산리의 한만옥씨는 나주 방면에서“처녀들을 중국에 있는 황군 위문을 위해 모집 중이다”는 말을 듣고, 같은 마을의 이운선씨에게 이를 전했다. 이운선 씨는 이 소식을 다른 사람의 집에서 전하며“딸을 둔 사람은 빨리 시집보내라. 당국에서 황군 위문 처녀를 모집 중이며, 나주 방면에서는 이미 3~4명의 처녀가 중국으로 보내졌다.”고 말했다.
이 발언 역시 유언비어 유포로 간주 돼, 육군 형법 위반으로 이운선씨는 금고 6월 집행유예 3년, 한만옥씨는 금고 4월에 집행유예 2년의 처벌을 받았다.
이번에 발굴된 두 건의 사건은 일제가 일본군 위안부 제도를 은폐하는 과정에서, 관련 소문을 퍼뜨린 주민들에게 형사 처벌을 가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영암군은 이를 통해 당시 민중이 느낀 불안과 공포, 그리고 일제의 탄압 실태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영암군은 이번에 발굴된 4인을 정부에 알려 전국적인 사례를 추가 파악하고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조치를 요청할 계획이다.
군은 현재 관련 인물들의 후손을 찾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송명심씨의 유족에게 해당 사실을 전했다. 우승희 군수도 직접 유족을 찾아 위로와 감사의 뜻을 전했다.
특히 이번 자료 발굴에는 순국선열 및 독립운동가 선양사업회장 박광섭 회장님의 헌신적인 노력이 컸다. 이에 대해 영암군은 깊은 감사를 표했다.
우승희 영암군수는 “일제가 일본군‘위안부’동원에 장애 요소를 없애기 위해 유언비어 죄로 형사처벌까지 했던, 당시 억압과 통제의 시대적 분위기를 살펴볼 수 있는 기록물로 큰 의미가 있다”며 “지역의 역사를 놓치지 않고 확인하고 역사와 진실을 후세에 전하는데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영암군은 전문가 검증을 거쳐 이번 사료를 학계와 공유하고, 향후 역사 전시 및 교육 자료로도 활용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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