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밀어내기식 ‘저가 수출’ 폭증, 정교한 규제책 마련을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4-06-03 14: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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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종 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미국이 드라이브를 건 대(對)중국 무역제재에 유럽연합(EU) 등이 동참할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중국산 전기차, 철강, 배터리 등의 국내 수입이 크게 늘고 있다. ‘G2 갈등’ 속에 미국과 유럽 수출길이 막힌 중국 기업들이 한국 등을 표적으로 과잉 생산된 제품들을 저가의 밀어내기 방식으로 수출을 늘리고 있다. 국내 전기차 수요 둔화 속에서도 ‘중국산 테슬라’의 인기 영향 등으로 중국산 전기차 수입액이 급증하고 있다. 판로를 잃은 중국산 제품의 국내시장 잠식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분석도 나온다.

올해 1∼4월 한국의 중국산 전기차 수입액이 4억 6,571만 달러(약 6,352억 원)를 기록하며 전년 동기(4,311만 달러)대비 10.8배로 급증했다. 미국이 북미산 전기차에 보조금을 주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시행한 데 이어 EU도 중국산 전기차 반덤핑 조사에 착수하면서 타격을 입은 중국산 전기차가 한국으로 몰려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산 철강 수입도 연간 수입량이 정점을 찍었던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나 증가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중국산 철강 수입 물량은 올해 1분기 228만 톤으로 전체 수입량의 57%를 차지했다. 철강은 중국의 건설·부동산 경기 침체로 해외로 ‘밀어내기’ 하는 대표적인 산업군으로 같은 기간 철강의 대중(對中) 무역적자는 18억 7,636만 5,000달러(약 2조 5,618억 원)에 이른다. 의존도가 96.7%에 달하는 중국산 배터리 수입은 50.7% 늘어나 1∼4월 대중 무역적자액은 11억 4,802만 5,000달러(약 1조 5,671억 원)에 달한다. 철강과 배터리 적자 규모가 각각 1조 5,000억 원을 넘어섰다.

반면 전반적인 수출 호조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 2일 산업통상자원부 수출입동향을 분석한 결과, 한국산 제품의 대(對)중국 수출은 급감해 1∼4월 대중(對中) 무역적자는 43억 910만 달러(약 5조 8,776억 원)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전체 누적 무역수지가 106억 달러 흑자를 기록한 것과 상반된 결과다. 대중 무역수지는 1992년 한중 수교 이래 30년간 흑자 행진을 이어갔지만, 지난해 처음으로 180억 달러 적자를 보이면서 마이너스로 전환된 데 이어 물량 공세의 수출로 적자 구조가 고착화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1월 16억 9,000만 달러 적자로 시작했다가 2월 들어 반짝 2억 3,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지만, 3월에 다시 8억 8,000만 달러 적자로 돌아섰다. 4월 들어서도 19억 6,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하면서 지난해 4월 22억 7,000만 달러 적자 이후 1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로 상징되는 중국산 초저가 공세가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

문제는 중국산 전기차에 100% 관세를 물리기로 한 미국처럼 과감한 대응책을 쓰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 전체 수출 중 중국 수출 비중은 2022년 22.8%, 2023년 19.7%로 하락했지만, 여전히 20% 안팎이고, 수입의 경우 이차전지 소재 등 산업용 원자재의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2022년 5월 23일 발표한 ‘우리나라 중간재 대외의존도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간재 수입 비중은 50.2%로 제일 높았고, 중간재 수입의 중국의존도 역시 28.3%로 가장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우리나라의 산업 생산에 필수적인 중간재의 대외의존도(50.2%)와 중국의존도(28.3%)가 주요 7개국(G7)과 비교해 높은 수준이라는 분석이다. 무었보다 한국이 중국산 제품에 미국처럼 높은 관세를 물릴 때에는 중국도 상응하는 보복에 나설 공산이 크다. 정부가 국가통합인증마크(KC mark │ Korea Certification mark) 없이 한국에 들어오는 중국 직구 제품들을 차단하려다가 소비자 반발에 부딪혀 철회한 일도 있었다.

한국은 교역 1, 2위 상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 속에 최대 피해국이 돼 가고 있다. EU, 일본 등 비슷한 처지의 국가들과 보조를 맞춰 중국의 덤핑 수출 대응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동남아·중동·아프리카 등으로 시장을 다변화하고 중국 기업들이 넘보지 못할 초격차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만이 비급(祕笈)이다. 경총은 지난 10년간 우리나라는 중간재 수입 중국 의존도가 8.9%포인트 높아진 반면 G7 국가들은 평균 0.8%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면서 해외에서 중간재 생산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높은 대외의존도와 중국의존도로 인해 국내 산업이 다른 경쟁국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며, 미·중 무역갈등, 요소수 사태, 주요 도시 봉쇄조치와 같은 중국발(發) 리스크에 더 취약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희토류, 철강, 리튬 등 산업용 원자재의 수입 비중과 중국의존도 역시 G7 국가 대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정부는 환경 친화성, 안전성 등을 기준으로 중국 저가 제품의 범람을 막을 정교한 규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은 민·관이 ‘원팀(One Team)’이 돼 글로벌 무역 분쟁 속에서 활로를 찾고 수출 총력전을 펼쳐야 할 때다. 핵심 소재의 중국 편중은 무역 적자뿐 아니라 안정적 공급망 확보에도 어려움을 주는 만큼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 중·장기적으로 핵심 소재에 대한 대중 의존도를 낮추고, 대중 수출 전략도 새롭게 짜야 한다. 앞서 정부는 수입처 다변화로 2030년까지 반도체·희토류·요소 등 핵심 품목의 중국 의존도를 50% 이하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렇듯 중국의 수입 수요 변화를 선제적으로 포착하는 등 트렌드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처해야만 한다. 정부는 세제·금융·예산 등의 전방위 지원과 규제 혁파, 혁신 산업 육성, 노동시장 유연화 등 다각도·다층적·다목적 지원책을 마련해야 하고 맞춤형 통상 전략과 정교한 외교력으로 기업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노력도 기울어야 한다. 기업은 과감한 투자와 초격차 기술 확보로 수출 시장과 품목을 다변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알테쉬’의 저가 공세가 한국 산업 전반으로 확대된다는 전제하에 초격차 기술력이 없이는 한국 산업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때마침 22대 국회가 개원했다. 정치권은 국가전략기술 및 연구개발(R&D) 세제 지원, 대형마트 새벽 배송 허용 등 경제 살리기 입법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다. 대외 환경 변화와 저출생·고령화에 대응하려면 기업 경쟁력과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근본 해법임도 각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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