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하고 창의적인 독립운동의 지성, 성재(誠齋)이동휘(李東輝) 선생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4-12-02 16: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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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재이동휘기념사업회 이상철



한국인들은 역사를 감정적으로 대한다. 사실에 근거한 냉철한 분석과 이성적 판단으로 주장하거나 설명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서양에는‘역사는 반복된다(History repeats itself)’라는 속담이 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 시대에 책임있는 자들이 종종 ‘역사의 책임’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이는 한국독립운동을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감성적 판단’을 활용하여 지나친 ‘영웅주의사관(영웅 숭배, 카리스마 등)’에 입각하여 독립운동사의 본질과 특성을 훼손하고 있는 감이 없지 않다. 우리 근대사에서 대표 사례가 망국에 이르는 중심에 있었던‘명성왕후’에 대한 평일 것이다. 

 

세상은 인간에 의해 편집되고 대중은 편집된 세상을 보고 살아간다. 역사적 진실과 진리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21세기‘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지능정보사회’에 살고 있다. 이제는 차원 높게 자신의 역사인식을 돌이켜 보아야 할 때이다. 올바르게 역사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위인에 대한 진실을 밝혀 솔직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동휘선생을 포함하여 역사에 획을 그은 인물의 평은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특수만 보고 보편타당한 전체를 못 보는 장님’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동휘선생께서 활동하시던 시대는 ‘대한제국 수립 선포(1897년)’와 ‘그 멸망(1910년)’, ‘군국주의 일제강점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시대로 돌아가서 이 땅에 책임있는 자들의 처세를 보면 대세에 별다른 저항 없이 순순히 받아들인 ‘대세순응형’, 좋은 집안 배경에다 공부를 해서 일찍 출세한 ‘현실주의자’, 그리고 이동휘선생처럼 오로지 구국의 일념으로 나라와 백성의 빛과 소금이 되어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수많은 열사(烈士), 의사(義士), 지사(志士), 의병(義兵), 독립군(獨立軍)들이 있었다.


역사인물을 대하는 작금의 현실은 한국의 고질병이기도 한 프로파간다의 이익에 따라 친미, 친일, 친중, 친러, 친북을 마음대로 이용하여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 적어도 정신이 바르다면 ‘한국독립운동사’를 정치 관점에서 자신의 이익에 따르지 말고 ‘그 당시의 진실과 사실에 근거’하여 ‘역사 앞에 투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한낱 신화처럼 영웅화된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공(功)과 과(過)를 모두 객관적 실체에 따라 들여다 보아야할 것이다. 그것은 철저하게 문헌과 문서, 신문, 잡지, 서간, 인터뷰, 관련 국가 자료 등의 뒷받침을 토대로 해야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러한 굴레에 갇힌 인물로 ‘대한국민의회 군무총장(1918~1919)’과‘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1919.11.~1921.1.)’를 지낸 ‘성재 이동휘(誠齋 李東輝)선생’이 있다.


이동휘선생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대단하고 중요한 역사 자산이다. 특이한 점은 성재 선생의 독립활동의 범위가 다른 독립운동가와 남다르다. 

 

큰 틀에서 활동영역을 보면 국방(강화진위대장), 교육(보창학교), 종교(감리회), 언론(권업신문), 외교(독립전쟁과 러시아), 정치 영역(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 사회주의운동)을 총망라하고 있다. 이동휘선생은 한국의 독립을 위해 대담하고 다양한 노선으로 독립활동에 참여하였다. 

 

이동휘선생은 1910~1920년 간 대부분 항일운동 단체와 관련을 맺고 있었으며 지도자로서 위치를 차지하셨다. 

 

한편 그는 사회주의 운동사의 핵심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이동휘선생은 대한제국 말, 군인으로부터 출발(궁중 시위대장, 삼남검사관, 강화진위대장)해, 강화도에서 기독교 개종과 더불어 기독교 계몽운동가였다. 

 

또한 강화도를 거점으로 하여 근대 교육가로서 그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한일강제병합 이후 정치적 망명을 결행하였으며, 권업회와 권업신문 활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며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의 독립은 대일 독립전쟁뿐이라고 생각하고 러시아 볼셰비키와의 인연을 갖고 마지막을 초기 사회주의 운동가로서 독립운동의 길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오늘날에 이동휘선생의 이미지는 제도화된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라는 이념의 틀에 갇혀 본질에 입각하여 평가되지 못하고 왜곡되어 있다. 

 

우리의 역사인식 자세에 다변화가 필요하다. 이동휘선생은 이념을 넘나들며 독립 쟁취에 필요한 노력을 모두 동원한 ‘실천적 독립운동가’였다. 선생이 활동하던 당시 신문과 잡지에 언급된 바와 같이 용기있는 ‘시대의 지성’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의 독립운동 정신은 미래 한국의 꿈과 희망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진정한 독립 – 통일된 대한민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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