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 (작가·미술칼럼니스트) (박정수-작가?미술칼럼니스트)

하남시에 사는 50살 된 화가가 있다.

거의 매주 한 번씩 인사동을 왕래하는데 차비며, 술값이며, 교통비가 한 달에 100만원 정도 들어간다고 한다.

수입원은 작품 판매인데, 요즘 소위 말하는 ‘끼인 세대’에 속하기 때문에 판매가 신통치 않다고 한다.

작업실에 박혀 그림만 그렸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되면 미술계에서 잊혀진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림 그리기와 외부 활동을 병행해야 한다.

끼인 세대의 화가들은 원로 취급은 못 받으면서 작품 가격은 호당 15만원에서 30만원 정도 나간다.

최근 활성화되어가는 미술시장 움직임에 비춰 볼 때, 이런 애매한 화가들보다는 젊은 화가들이 훨씬 유리하다.

작품 가격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사회 활동과 예술가로서의 경력이 쌓인 화가들은 작품 가격을 내리지도 못한다.

창작의 자유는 있으나 작품 가격의 구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들을 정말 유연성 없는 ‘미술계의 끼인 세대’이다.

몇 해 전 남미에서 만났던 어떤 외국 작가는 매월 한 차례씩 자신의 작품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온다.

한국말도 못하면서 한글로 몇 자 적어 새로 한 작업이라면서 보낸다.

언젠가 국제 행사라도 있어서 외국 화가가 필요하다면 반드시 그 작가를 초청할 예정이다. 작품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외국 화가 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젊은 화가들도 화랑 관계자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꾸준히 홍보해야 한다.

전시회를 하면서 홍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상시 관계자들의 범위 안에 있으면 더 유익할 것 같다.

경상도 북부지방 어디에 가면 칠순이 넘으신 나이든 화가 한 분이 계신다.

중학교 미술 선생을 하다 퇴임한 분인데 개인전은 2회밖에 하지 않았다.

가끔 그분의 작업실을 방문하면 40평 남짓한 수장고를 열어보여 주신다.

평생 동안 그린 작품 수백 점이 켜켜이 쌓여 있다.

몹시 자랑스러운 모습이다.

“작품 얼마나 파셨어요?”

“작품? 팔 생각 안 해. 그냥 내가 좋아서 그리는 것이지 작품을 팔라고 그리나?”

“이렇게 많은 작품, 쌓아두기만 하면 좀 그렇잖아요.....”

“알아, 하지만 내가 죽으면 자식들이 팔겠지, 뭐. 그림 전시할 수 있는 개인 미술관이나 있었으면 해. 누군가 근처에 미술관이나 지어주면 작품 다 기증할 생각이야.”

소통이 안 되는 이런 예술들을 보고 있으면 답답해진다.

미술품은 살아 움직이면서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의무가 있다.

8년 전부터 관계를 가진 어떤 화가는 최근 들어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다.

첫 전시 때 전시 서평을 쓰면서 만났는데, 참으로 성실한 화가이다.

자신은 미술 노동자이기 때문에 하루 8시간 이상은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낮에 다른 일을 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8시간을 채우고 만다.

작품 전시나 판매에도 적극적이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었으면, 그 작품 사진을 들고 화랑이나 큐레이터들을 만나서 자신의 작품이 어떠냐는 의견을 묻는다.

전시를 해달라고 한다거나, 작품을 사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를 해달라고 찾아간다.

잘난 척 하기 좋아하는 젊은 큐레이터들은 무척이나 반긴다.

어린 친구에게 싫은 소리를 들어도 표정하나 변하지 않는다.

그룹전이나 아트페어와 같은 전시가 있으면 화랑들은 이 화가를 반드시 찾는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곳’에 그를 부른다.

최근에는 해외 활동도 시작했다.

아는 사람을 통해 외국 화랑을 소개받은 후 작품을 보내곤 한다. 많은 양은 아니어도 돌려받지 못할 각오로 보낸다.

작가들은 그림만 그려서는 안 된다.

그림이 상품일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한다면, 그래야 먹고 살 수 있다는 걸 인정한다면, 스스로를 홍보해야 한다.

자신을 널리 알릴 줄 아는 작가, 그런 작가들의 그림은 미래가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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