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집 비운 ‘나 홀로 아이’ 또 화재로 희생, 돌봄 공백 서둘러 해소를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5-07-06 11:3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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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종 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부모가 집을 비워 보호자도 없이 홀로 집에 남겨진 ‘나 홀로’ 어린아이들이 화재로 숨지는 가슴 아픈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어 안타까움이 더하고 있다. 늦은 밤 혹은 이른 새벽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벌어진 참극은 작금의 우리 사회의 돌봄 공백이 빚은 서글픈 민낯이자 자화상이다.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되기 전인 2005년 이전 지어진 아파트에서 발생해 불이 크게 번지지 않았음에도 소중한 생명이 희생됐다. 두 참극의 공통점은 부모 없이 아이들만 집에 있었다는 점이다.

우선 참사 개요를 보면 지난 7월 2일 오후 11시께 부산 기장군 기장읍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8살 6살 자매가 목숨을 잃었다. 치킨집을 운영하는 부모가 가게에서 놀던 아이들을 집에 데려와 재우고 집을 비운 지 30분 만인 오후 11시 58분에 불이 났다. 부모가 외출하며 켜둔 에어컨 주변 멀티탭에서 발화한 불이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과 9일 전인 지난 6월 24일에도 부산진구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해 잠자던 10세, 7세 자매가 숨졌다. 당시 불은 청소 일을 하는 부모가 이른 새벽 집을 비운 오전 4시 15분에 발생했다. 화재 원인은 역시 전기적 문제로 추정됐다. 화재가 발생한 기장군 아파트는 2007년, 부산진구 아파트는 1994년 준공된 비교적 노후화한 아파트들이어서 2018년에서야 6층 이상 건축물 전체로 의무 설치가 확대된 스프링클러 설비는 애초부터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손쓸 도리 없이 희생됐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경제적 이유로 부모는 일터로 나가고 아이들만 집안에 방임된 채 돌봄 공백이 방치되거나 방기로 인해 부모가 집을 비워 ‘나 홀로’ 아이들이 화재로 희생된 게 한두 건이 아니다. 올해 2월 26일 오전 10시 43분 인천 서구 심곡동 자택에서 부모가 신장 투석 치료와 식당 일을 위해 집을 비운 사이 홀로 있던 중 불이 나면서 얼굴에 2도 화상을 입고, 연기를 흡입해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으나 사망했고, 2020년 10월 14일 오전 11시 10분쯤 인천 미추홀구 한 4층짜리 빌라에서 보호자가 집을 비운 사이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발생한 화재로 동생은 사망하고 형은 중상을 당했으며, 이보다 앞선 2020년 3월 4일 오후 3시 2분께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4층짜리 상가주택 건물의 3층 가정집에서 불이 나 7살 아이 1명과 4살 아이 2명이 숨졌다. 사촌 관계인 세 어린이는 코로나 19로 어린이집 등이 휴원하자 외할머니 집을 찾았다가 어른들이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참변을 당했다.

1990년 3월 9일 새벽 발생한 서울 마포구 망원동 반지하 연립주택 남매 참사였다. 당시 5세(여), 3세(남) 남매가 집 안에서 불장난을 하다 발생한 화재로 질식사했다. 아빠는 경비원, 엄마는 파출부로 일하고 있었는데, 자신들이 출근한 사이 아이들이 위험에 빠질까 봐 밖에서 문을 잠근 것이 화근이었다. 이 화재 사망 사건을 계기로 「영유아보육법」이 1991년 1월 14일 제정됐지만, 35년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도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를 않았다. 저출생이 사회적 문제로 급부각되면서 정부·지방자치단체·기업들이 육아 친화적인 환경 구축을 위해 노력해 왔음에도 유사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맞벌이 부부가 의도치 않게 자리를 비운 사이 자녀가 변을 당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렇듯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집에 아이만 남겨지는 현실을 불가피하게 여기는 경향은 지금도 여전하다. 정부가 돌봄·육아 지원을 강화하고는 있지만 돌봄 공백은 여전히 큰 구멍이다. 문제는 아이를 혼자 두는 일이 얼마나 위험천만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 다른 선진국에서는 12∼16세 미만 아이를 보호자 없이 방치(放置)하는 때에는 엄벌(嚴罰)을 과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아동을 혼자 두는 행위를 아동학대로 간주하고 법으로 금지한다. 예컨대 메릴랜드주는 8세 미만, 일리노이주는 14세 미만 아동을 혼자 두면 처벌을 받는다. 부모가 자녀를 혼자 두었다가 화재나 사고로 이어지면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많은 선진국이 아동 방임(放任)을 무겁게 처벌할 뿐만 아니라 혼자 둬선 안 되는 구체적인 상황과 연령대까지 꼼꼼하게 규정하고 있다. 한국도 유사한 법규를 두고 있지만, 연령대가 명시돼 있지 않고 법 규정도 모호한 편이 없지 않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어린 자녀를 집에 떼놓고 나가는 부모의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사회 전반에 아이를 혼자 둬도 괜찮다는 안일한 인식이 퍼져 있는 것은 아닐는지 찬찬히 반추하며 뒤돌아봐야만 한다.

소방청이 분석한 ‘최근 3년(2022년~2024년)간 13세 이하 어린이 안전사고 발생현황’에 따르면 3년간 어린이 안전사고는 총 10만 9,502건으로, 해마다 연평균 3만 6,501건의 안전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생 장소별로는 절반에 가까운 4만 7,035건(43.0%)이 집에서 발생했고, 도로 1만 8,270건(16.7%), 학교·교육시설 1만 1,218건(10.2%), 도로 외 교통지역 1만 36건(9.2%), 오락·문화시설 6,687건(6.1%), 상업시설 5,894건(5.4%), 운동시설 3,558건(3.2%) 등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집이 가장 안전하다’라는 인식이 널리 팽배해져 있지만, 실제로 어린이 안전사고가 가장 빈발하는 장소는 바로 집인 셈이다. 그러나 여성가족부 조사결과 2023년 기준 초등학생 자녀가 방과 후 1시간 이상 혼자 있는 비율이 28.1%에 달했다고 동아일보는 보도하고 있다. 아이들이 집에서도 안전사고에 노출될 가능성이 큰 셈이다.

정부는 보호자가 아이들을 돌볼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해 ‘아이돌봄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생후 3개월~12세 아동이 있는 가정을 대상으로 ‘돌보미’가 직접 방문해 돌봄을 제공하는 제도로, 정기·단기·긴급 서비스로 나뉜다. 단기 서비스는 최소 4시간 전, 긴급돌봄은 2시간 전까지 신청을 할 수 있다. 이용 신청을 하고 평균 한 달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문턱이 높다. 특히 밤이나 새벽, 주말 같은 돌봄 취약 시간에 쓸 수 있는 긴급돌봄 서비스의 경우 돌보미 인력이 부족해 10번 신청하면 4번은 실패할 정도로 이용이 어렵다고 한다. 이렇듯 이용 접근성이 낮다는 게 큰 문제다. ‘아이돌봄 서비스’ 평균 대기기간은 2022년 27.8일, 2023년 33일, 2024년 상반기 기준 32.8일로 3년 연속 한 달 가까이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다. 특히 밤늦은 시각이나 주말에 이용할 수 있는 긴급돌봄의 경우 신청자의 10명 중 4명은 매칭(Matching)에 실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돌봄 시스템은 평일 낮 시간대에만 집중돼 있다. 야간이나 긴급 상황엔 부모가 책임져야 하고, 저소득층일수록 그 사각지대는 커만 보인다. 그 결과 아이들이 반복적으로 혼자 방치되고, 결국에는 참사로 이어지는 악순환만 반복이 된다. 이제 ‘혼자 남겨진 아이들’을 위한 근본적 해법이 필요하다. 차제에 정부는 이 문제를 더는 개인의 몫으로만 방관(傍觀)할 것이 아니라 공적 시스템으로 적극적으로 해결해야만 한다.

정부는 최근 부산 아파트 화재로 아동이 사망한 사고와 관련해 지난 7월 4일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전국 노후 공동주택의 화재 취약점 전수 점검과 초기 대응 방안 마련에 나섰다. 주요 대응 방안으로는 ▷노후 공동주택 화재 취약점 긴급 점검, ▷연기감지기·경보기 보급 지원, ▷‘화재대피 안심콜’ 도입, ▷심야 돌봄서비스 확대, ▷초등학교 대상 화재안전 교육 확대 등이 논의됐다. 특히 ‘화재대피 안심콜’ 도입은 소방관이 화재 발생 시 거주자 정보와 연계해 보호자 및 아동에게 직접 전화로 대피를 안내하는 시스템으로, 교육부 협조 아래 안전교육을 통해 신청을 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재탕·삼탕 대책에 그쳐서는 결코 아니 된다.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돌봄·안전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충분한 예산과 정교한 정책적 지원이 이뤄져야만 한다. 생색만 내서는 결코 안 된다. 부모의 각별한 주의와 경각심이 요구되는 것 또한 물론이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나선다는 게 우리 사회의 책임이자 국민적 정서다. 그것은 단순히 아이 키우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사는 이웃에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태도와도 연결되는 문제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깊이 고민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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