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대 총선 당시에는 최열 박원순 정성헌씨 등 시민·사회단체들의 저명인사가 주도가 되어 ‘박계동 전 의원의 사면복권을 요구하는 모임’을 결성했는가 하면, 함세웅 송기인 김병상 신부 등은 청와대에 진정의 뜻을 전달했었다.
또 송월주, 진관 스님, 법조계의 이돈명 변호사 등도 당시 박 전 의원 사면복권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그만큼 그는 개혁성 면에서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따라서 이번 총선연대 낙천자 명단에 그의 이름이 오른 것은 의외라고 할만하다는 것이 박 전 의원 주변의 평가다.
그를 잘 알고 있는 참여개혁양천시민모임 김영진 대표도 박 전 의원이 낙천자 명단에 올라간 사실은 ‘충격’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을 무심히 들어 넘기다가 총선시민연대가 발표한 2차 공천반대 인사 명단 속에 박 전 의원이 포함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란 나머지 순간 멍해졌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박 전 의원이라니... 그는 민주화운동의 선봉장이요, 연기군 관권선거 폭로의 주역이며 무엇보다 노태우 비자금을 폭로해 정치부패 척결의 역사적 전기를 만들었던 한 시대의 영웅이다.”
실제 김 대표의 지적처럼 박 전 의원은 92년 총선 당시 노태우 정권이 저지른 관권선거 비리를 한준수 당시 충남 연기군수가 박 의원을 통해 폭로했다. 그런데 그가 왜 낙천자 명단에 오르게 됐는지, 그리고 그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직접 박 전 의원으로부터 들어 본다.
-낙천자 명단에 오른 사실을 언제 알았으며, 당시의 심정은 어떠했는지요.
▲지난 오후 3시 차 안에서 총선연대의 낙천낙선 대상자 2차 명단발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낙천낙선 대상에 제가 올라있었으며, ‘총선연대에서는 2차대상자의 선정에 있어 예상후보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정보수집을 거친 엄격한 실사의 결과라고 밝혔다’는 말로 뉴스의 끝을 맺고 있었습니다.
저는 순간 온 몸이 달아오르고 똥바가지를 뒤집어쓴 오욕감이 들었습니다. 곧 이어서 여기저기서 휴대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가족들과 친구들, 선거준비 사무실과 지역에서 저를 아끼고 돕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정말 참담했습니다.
-총선연대는 박 전 의원이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선거법위반 유죄판결을 받은 사실을 문제삼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96년의 시국강연회를 이유로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선거법위반 유죄판결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총선연대가 저의 공소장을 통해 사실내용을 확인하거나 적어도 저에게 반론의 기회라도 주어졌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시국강연회를 이유로한 저에 대한 유죄판결은 누가 보아도 정치보복으로 인한 결과였습니다.
-당시 판결을 정치보복이라고 할만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습니까?
▲먼저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제정구 이부영 노무현 김정길 이철 유인태 원혜영 그리고 저 박계동 등 소위 개혁세력으로 ‘지역주의 극복과 개혁’을 강력히 주장했던 꼬마민주당 출신의원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계은퇴 번복발언과 명분없는 분당으로 인해 명분을 따르느냐 아니면 실리를 구할 것이냐의 문제로 정치적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때 천도교회관에서의 ‘명분없는 재선보다 차라리 장렬하게 전사하겠다’는 작고한 故 제정구 의원의 발언은 지역주의 정치에 볼모되어 끌려 다니기를 거부한 우리의 숭고한 의지를 가장 극명하게 표현해 주었습니다.
그러니 당시 정부가 우리를 곱게 볼리 만무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시국강연회에서 한 말이 문제가 돼 선거법위반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시국강연회는 어떻게 열게 된 것입니까.
▲제가 95년 10월19일 노태우비자금사건을 국회에서 폭로하고 이어서 이 사건의 관련자 처벌과 진상의 올바른 수사를 촉구했으나, 검찰은 4000억 비자금 조성 내역을 4대 재벌기업을 비롯한 30여 대기업 총수들을 단 2일만에 액수할당식 짜집기 수사를 통해 억지 봉합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4000억의 조성내역이 율곡비리, 고속철사업, 원전발주비리, 석유비축기지공사사업 등 소위 5·6공비리라고 불리는 대형국책사업을 둘러싼 비리로 조성된 검은돈으로 확신했던 저희 당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처사였습니다.
이것을 국민들에게 직접 알리자는 것이 당시 전국적으로 시국강연회를 개최하게 된 동기입니다.
당시 정부는 이 시국강연회의 파괴력을 두려워해 선거법을 이유로 사실상 원천저지에 나섰던 것입니다. 물론 제가 주연사로서 이들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박 전 의원은 ‘선거법 위반발언은 노무현 대통령이 하고 처벌은 박계동이 받은 꼴’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는 데 그게 무슨 뜻입니까.
▲저의 공소사실 1번에 적시된 노무현 대통령의 종로집회 발언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96년 2월10일, 종로2가 제일은행 본점(당시 노무현 지구당사 옆)에서 개최된 시국강연회에서 “이 종로에서부터 노무현을 앞세우고 승리하는 서울 시민, 희망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이 될 것입니다. ... 김대중씨의 정체 그것도 분열의 정치입니다.
김종필씨 그는 부패의 정치입니다. 민주당을 살려야 나라가 삽니다. 3김의 정당은 모두 쭉정이 정당입니다. 이번 4.11총선에서 한번 해 치웁시다”라고 발언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발언이 핵심적 사유가 되어 당시 시국강연회의 주체였던 ‘희망물결본부’의 꼬마민주당 책임자였던 저를 상대로 처벌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한마디로 선거법 위반발언은 현 노무현 대통령이 하고 처벌은 박계동이 받은 셈이된 것입니다.
-노 대통령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제가 선거법위반 사건으로 재판을 받을 때 저의 변호를 담당했던 이찬욱 변호사는 노무현 대통령을 증인으로 세우는 것이 어떠냐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반대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지난 일을 가지고 김대중 대통령의 정부하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하시는 분에게 “김대중 대통령이 분열주의자”로 비난했던 내용을 법정에서 진술케 하는 것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대선에서도 저는 이 공소장의 자료를 감추었습니다.
이런 의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저를 위해 노무현 대통령이 한 일은 전 비서관이었던 성연찬씨를 통해 100만원권 수표를 보내 벌금을 대신 내 준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끝으로 총선연대에 전할 말이 있다면, 이 기회에 한 말씀하시죠.
▲저 박계동은 총선연대의 노력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올바른 재판관은 죄를 선고함에 있어 아픈 마음으로 억울한 피해가 없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한 정치인에게 정치적 사형선고를 그렇게 무책임하게 내릴 권한을 도대체 누가 부여했습니까?
저는 제1회 대한민국 국민상을 수상했고, 전국기자 1380명이 뽑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한겨레신문에서는 ‘독자가 뽑은 올해의 인물’로 박계동을 뽑았고, 뉴스메이커에서는 ‘95년의 좋은 한국인’으로 그리고 경실련에서는 ‘경제정의를 실천한 시민상’을 수여했습니다.
진정 저 박계동이 오늘의 정치의 무대에서 떠나야 마땅할 사람입니까?
올바른 역사인식은 있는지, 당신들이 생각하는 정의는 과연 무엇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공개적인 사과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억울한 사람은 없는지 다시 한번 살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영란 기자 joy@simin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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