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피의사실 공표로 인권침해 당해”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5-03-03 19: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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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에 검찰 제소한 이 부 영 前의장 열린우리당 이부영 전 의장은 3일 본사와의 인터뷰에서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로 인한 인권침해와 관련 “진정서를 국가위원회에 제출했다”며 이 같은 일로 진정을 한 정치인은 자신이 처음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의장은 이날 오전 시내 국가인권위를 방문, “검찰이 지난 1월말 `한화그룹 대생인수 비리의혹’ 수사를 하면서 내가 한화로부터 불법으로 로비성 정치자금을 받은 것처럼 피의사실을 공표, 인격권 및 평등권, 재판청구권 등을 침해하고 명예훼손의 고통을 줬다”며 이 같은 내용의 진정서를 접수시켰다.

검찰은 이 전 의장이 한화그룹으로부터 1000만원짜리 채권 5장을 수수했다는 혐의의 피의사실을 공표한 바 있다. 다음은 이 전 의장과의 일문일답이다.

-누구를 상대로 진정서를 제출했으며, 진정서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가.

▲송광수 검찰총장, 박상길 대검 중수부장, 홍만표 대검 중수부 2과장 등을 상대로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에 따른 인권침해 사실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조사와 구제를 요청하고 구제권고 및 고발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진정했다.

검찰은 올해 1월 말경부터 2월 초까지 소위 ‘한화그룹의 대생인수 비리의혹’ 수사를 하면서 내가 한화로부터 로비를 받아 불법으로 정치자금을 제공 받은 것처럼 피의사실을 공표해 인격권 및 평등권, 재판청구권 등을 침해했고 명예훼손의 고통을 줘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라 진정을 내게 된 것이다.

정치인이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에 따른 인권침해 사실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조사와 구제를 요청하고 구제 권고 및 고발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진정한 것은 내가 처음이다.

-송광수 검찰총장 등 피진정인들의 구체적인 인권침해행위는 무엇인가.

▲검찰은 처음부터 객관적이고 충분한 증거나 자료없이 내가 한화로부터 로비를 받아 1억원 안팎의 금품을 수수한 것처럼 피의사실을 공표했다.

또 그들은 내 비서관이었던 장 모씨가 3000만원 채권수수사실을 인정하고 이에 부합하는 진정을 하고, 김 모씨의 진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3000만원 외에 수천만원의 추가수수의혹을 제기하면서 내 신뢰성에 타격을 가했다.

그러면서도 검찰은 피의사실 공표과정에서 내게 유리한 정황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객관적인 정보나 증거없이 마치 내 비리가 확정된 사실인 것처럼 사전에 피의사실을 언론에 공표해 보도하게 함으로써 내 명예를 훼손했다.

더구나 수사과정에서도 내게 유리한 사실은 제외하고 오로지 검찰이 미리 설정한 결론인 소위 ‘1억원 직접 수수설’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부당하게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이를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위법행위를 자행함으로써 내 인격권과 평등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침해하고 말았다.

형법 제126조는 수사업무를 수행하는 자의 피의사실 공표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이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과 같은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곧 피의자가 수사기관에 비해 대단히 불리한 처지에 놓인 수사중에, 수사담당자가 일방적 사실과 추정에 기초해 피의사실을 공표할 경우, 피의자로서는 법원에 기소돼 법정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를 제시하기도 전에 이미 범죄자로 취급되고 낙인찍히는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된다.

결국 피의자가 반박할 여지도 없는 상태에서 수사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국가기관 스스로 헌법상 보장된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이 전 의장께서는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가 헌법상 보장된 ‘무죄추정원칙’에 반한다고 보는 것인가.

▲ 물론이다. 헌법 제27조 제4항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 추정된다”고 한다. 이는 수사기관의 수사진행 중에는 수사기관이 정보를 독점한 일방적인 조사가 이루어질 뿐, 피의자로서는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인식에 기초한 것이다.

피의사실의 진위여부는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가 보장된 공정한 재판과정을 통하여서만 제대로 밝혀질 수 있는 것으로, 확정판결로서 사실관계와 죄책이 확정되기 전에 피고인이 유죄로 취급될 경우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은 유명무실해져 형사절차의 공정성은 크게 손상된다는 점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은 형사법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다.

또한 형사소송법 제198조는 “검사, 사법경찰관리 기타 직무상 수사에 관계있는 자는 비밀을 엄수하여 피의자 또는 다른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국민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공적인물(Public figure)의 경우 피의사실 공표가 일부 허용되는 경우도 있지 않는가.

▲피의사실 공표로 인한 인권침해를 방지하고 동시에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도 충분한 증거나 자료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또 범죄사실의 공표가 일반국민들에게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항이고, 독립된 인격체로서 현대생활을 해 나감에 있어서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로서의 실질적 가치를 지니는 것이어야 한다.

물론 피의자에게 불리한 상황뿐만 아니라 유리한 상황도 함께 공표하는 것을 요건으로 한다.

이와 관련 대법원은 “민주국가에서 여론의 자유로운 형성과 전달에 의하여 다수의견을 집약시켜 민주적 정치질서를 생성ㆍ유지시켜나가는 것이므로 표현의 자유, 특히 공익사항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헌법상의 권리로서 최대한 보장을 받아야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개인의 명예나 사생활의 자유와 비밀 등 사적 법익도 보호되어야 할 것이므로, 인격권으로서의 개인의 명예의 보호와 표현의 자유의 보장이라는 두 법익이 충돌하였을 때 그 조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구체적인 경우에 사회적인 여러 가지 이익을 비교하여 표현의 자유로 얻어지는 이익, 가치와 인격권의 보호에 의하여 달성되는 가치를 형량하여 그 규제의 폭과 방법을 정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실제로 대법원은 범죄행위의 성격과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 “일반 국민들은 사회에서 발생하는 제반 범죄에 관한 알 권리를 가지고 있고 수사기관이 피의사실에 관하여 발표를 하는 것은 국민들의 이러한 권리를 충족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이라 할 것이나, 헌법 제27조 제4항은 형사피고인에 대한 무죄추정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고, 형법 제126조는 피의사실 공표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으며, 형사소송법 제198조는 검사, 사법경찰관리 기타 직무상 수사에 관계있는 자는 비밀을 엄수하여 피의자 또는 다른 사람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바,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행위는 공권력에 의한 수사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국민들에게 그 내용이 진실이라는 강한 신뢰를 부여함은 물론 그로 인해 피의자나 피해자 나아가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하여 치명적인 피해를 가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수사기관의 발표는 원칙적으로 일반국민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항에 대해 객관적이고도 충분한 증거나 자료를 바탕으로 한 사실발표에 한정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물론 정치인에 대한 수사가 일반국민들에게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치인은 ‘공적 인물’로서 일반인에 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인에게도 인권이 있다. 정치인들이 그동안 국민들로부터 아무리 심한 불신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수사기관의 인권침해가 용납될 수는 없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한 요구사항은 무엇인가.

▲우선 피의사실 공표와 같은 검찰의 무리한 수사 관행에 대해 제동을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와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로 인해 개인이 입게 되는 명예훼손, 사생활침해, 인격권침해 현상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 무죄판결을 받은 박주선 전의원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내 경우만 보더라도 7년전에도(1998년) 똑같은 일을 검찰로부터 당했던 경험이 있다(동서울상고 사건, 대법원 2003도 2776). 검찰은 당시 동서울상고 재단 관계자들을 상대로 강압수사를 벌여 내게 돈을 건네줬다는 허위진술을 받아내 기소했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무죄를 선고했다. 기나긴 법정싸움 끝에 진정인의 결백은 밝혀졌으나 생사람을 잡았던 검찰은 무죄 확정판결이 난 뒤에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고, 오히려 당시 나를 기소했던 담당검사는 문책은커녕 영전이 베풀어졌다.

그래서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구제가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피의사실 공표와 그에 근거한 언론보도로 인해 당사자는 막대한 정신적ㆍ물질적 피해를 입게 된다. 그렇지만 사후에 무죄판결을 선고받는다고 해도 실효성 있는 구제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는 사회 전체적으로 검찰의 위법한 공권력행사와 무리한 수사관행에 제동을 가해야 하는 이유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검찰의 행위가 내 인격권, 평등권 및 재판청구권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따끔하게 그들의 인권침해를 지적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집권당의 의장을 지낸 나까지도 검찰의 부당한 인권침해에 고통 받고 있는 마당에 일반시민들은 어떻게 인권을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검찰을 상대로 진실을 가리고 인권침해를 호소하는 내 노력이 개인의 일만은 아닌 이유인 것이다.

/이영란 기자 joy@simin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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