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의원은 이 책에서 ‘연대적 공존체제’의 확립을 위한 방안으로 ▲북한 주민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물적 지원 ▲평양과 서울에 정부 대표부 교환 ▲남과 북의 특수 관계를 인정하고 다른 체제를 가진 채로 협력적 공존 ▲남북한 협의체로서 ‘민족회의’ 수립 등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 진 의원은 21일 시민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북한 인권 문제는 북한 당국을 설득, 효과가 있도록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접근 필요하다”며 “북이 핵 무장을 하지 않아도 존립이나 체제유지는 보장된다는 점을 인지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진 의원은 특히 “북한을 정상적 국가 체제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 의원의 출판기념회는 한나라당 초선의원들의 모임인 ‘초지일관’의 주최로 내달 2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다.
다음은 진 의원과의 일문일답이다.
-이번에 책을 출판하게 된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는가.
▲깃발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오래전에 작가 선우휘 선생님의 소설 <깃발 없는 기수>를 읽은 적이 있다. 우리에게 깃발은 무엇인가? 깃발은 지시등이고 나침판반이며 지령서이기도 하다. 깃발이 무성한 이데올로기 시절이었는데도 깃발이 없다는 말은 깃발다운 깃발이 없었던 당시 상황에 대한 작가의 회환을 표현한 것이다.
지금 나는 정치가의 자리에 서 있다. 그리고 정치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다니면서 여러 사람들의 주장을 듣는다. 대부분이 정치적 구호만으로 끝날 때가 많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구체적 실천 방안을 제시해주지 않는 정치적 구호는 허구이다.
우리의 현대사에서 중요한 정치적 계기마다 깃발이 나부꼈다. 그러나 깃발을 보고 따라간 결과가 처음의 깃발이 가리키던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사람들의 기대감은 배신감으로 바뀐다. 차라리 깃발이 처음부터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단지 깃발 흉내를 낸 것들을 깃발로 여기면서 흔들고 다녔던 것이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가르쳐 주는 깃발, 현재의 위치를 알려주는 깃발은 필요하다.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 방향을 제시해 주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내가 정치인으로 나서게 된 이유를 이 작은 깃발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어 무엇보다도 보람을 느낀다.
-5대 개혁정책을 발표하셨는데, 그 가운데 교육정책이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것 같다. 교육개혁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
▲인간적 가치를 실현하면서도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이다. 우선 대학에 학생 선발 자율권 부여 ▲다선적인 학제로 변경 ▲사립대학에 기여입학제 허용 ▲대학생들에게 등록금·생활비를 대여해 주는 ‘교육은행’ 설립 ▲사립학교 설립자에게는 명예를 부여하되 그 소유의 세습성을 인정해서는 안 되며, 학교행정 결정에 학교구성원들(교사, 학부모, 동창회, 지역사회 유지 등)도 참여 ▲교원평가를 정기적이고 엄격하게 실시 ▲신입사원 선발, 인사고과, 급여체계에서 학력란 폐지로 학력주의, 학벌주의에 의한 차별 금지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개혁정치를 위한 첫번째 과제로 “‘총합국가’로 재구성돼야 한다”고 하셨는데, ‘총합국가론’이라는 게 무엇인가.
▲‘총합국가’는 국가의 구성요소를 가정, 시민사회, 시장사이에 정상적인 연대와 연관성을 맺게 할 때 이룩되는 국가의 모습이다.
국가 속에 자리잡은 생활공동체로서의 가정, 정치공동체로서의 시민사회, 경제공동체로서의 시장이 각기 제 기능을 발휘해야 국가가 국가다워 지는 것이다. 가정, 시민사회, 시장이 어울려져 각각 그 나름의 위치를 정확하게 자리 잡고 그 기능을 수행하게 될 때, ‘정상국가’가 성립될 수 있고, 이 3자가 자율적으로 제 기능을 하게 하고 통합적으로 결집되게 하는 것이 국가의 최종적 역할이라고 생각하며 이러한 주장의 핵심이 곧 ‘총합국가론’이다.이것이야 말로 우리 이웃과 젊은 세대를 위해 나에게 맡겨진 소명이자 내가 정치를 하는 궁극적인 목표다.
-정치에 대한 진 의원의 로드맵(Roadmap)은 무엇인가.
▲‘인간의 얼굴을 한 자유주의’다. 이것은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개인과 집단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를 접합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주장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유주의’는 시장지상주의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도 아니고, 국가가 국가답게 올바로 기능함으로써 모두가 함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유주의라고 말하고 싶다.
나의 꿈은 해방의 정치, 화해의 정치, 통합의 정치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해방의 정치’란 ‘억압에서 벗어남’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동의하지 않는 것에 의해 부과되는 억압은 사악한 강제일 뿐이다. 나는 그 사악한 강제의 제거가 해방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화해의 정치’를 주장한다. 갈등을 넘어 화해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먼저 갈등의 본질을 알아야 하고 원인과 전개 과정에 대한 정확한 인식도 필요하다. 그리고 난 뒤 잘못을 시인하고 속죄할 때 진정한 화해가 이뤄질 수 있다.
나는 ‘통합의 정치’를 주장한다. 통합은 단순히 모두가 하나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지도체계, 새로운 삶의 방식에 모두가 합의할 때 비로소 이룩되는 과정이자 결과이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전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다. 민족 통합이라는 당면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 민족이 해야 할 당면 과제 세가지를 생각해 봤다. 첫째는 민족 통일이고, 둘째는 사회 통합이고, 셋째는 민주주의 정치 발전이다.
민족의 통일은 우리 민족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오늘날 세계화의 흐름 속에 있다 하더라도 나는 우리의 통일 문제만은 민족화 또는 국내화 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민족 통일이나 남북 통일이라는 말보다는 민족 통합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민족이 단순히 하나로 어울리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고 완전히 일체성을 이루는 것, 즉 합일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방의 존재와 위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전제돼야 하며 그런 연후에 하나로서 달려가는 일대 결단이 이뤄져야 한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어울려져서 이긴 자도 없고 진 자도 없는, 어느 면에서는 모두가 다 이긴 자가 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통일, 통합의 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정치 발전의 과제를 살펴보면, 나는 자유민주주의와 합리적인 시장경제체제, 그리고 이것들의 기반이 되는 시민사회, 이 세 가지가 적절하게 어울릴 수 있을 때 비로소 본질적 의미의 민주정치 즉 ‘참여국민정치’가 실현될 수 있고, 체제 우월성을 바탕으로 통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단순히 민주주의라는 말을 사용하기보다는 ‘참여국민정치’라는 말을 쓰고 싶다. ‘참여국민정치’야말로 ‘인간의 얼굴을 한 자유주의’의 정치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진 의원께서는 북한 주민에게 자율적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게 무슨 뜻인가.
▲민족 통합을 위해 북한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 여러 논란들이 있는데, 나는 기본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자율적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 주민과 북한 체제에 대해 그들의 의지와 결정을 존중해 줘야 한다. 위협적인 전략이나 회유와 같은 접근은 지양해야 한다.
지금 북한이 취하고 있는 ‘벼랑 끝’생존 전략에 대해서는 다음 두가지로 대응해야 한다. 국민의 생존을 위한 경제적 지원은 인도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인간의 생존권은 어떤 상황에서도 보장되야 할 인간 보편의 가치이자 윤리라고 생각한다. 또한 북한의 개방이나 체제 변화를 강제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변화는 그들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이뤄 질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통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통일보다 ‘통합’, ‘연대적 공존’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는 상호 체제를 인정해 주고 서로 그 선택을 존중해 줘야 하며 서로의 특별한 관계로 공동의 발전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통합을 이룩하기 위한 일련의 전개를 ‘연대적 공존체제’라고 부르고 싶다. ‘연대적 공존체제’는 상호 인정이 기본 전제이다.
-민족 통합을 위해서는 어떤 정책 방향이 추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첫째, 북한 주민에 대해서는 인간적인 삶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물적 지원을 해야 한다. 북한을 형제로 받아들이고, 북한 주민에 대한 삶의 일정 조건을 책임질 때, ‘연대적인 공존체제’로 나아가는 통합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남과 북이 평양과 서울에 정부 대표부를 교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남과 북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고, 우편과 통신으로도 교류할 수 있도록 행정적인 지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만남과 교류가 있어야 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
셋째, 남과 북의 특수관계가 인정돼야 한다. 특수관계란 같은 민족이면서도 다른 체제를 가진 채로 협력적인 관계를 맺고 공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외적으로도 독립된 각각의 정부로서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남과 북의 군사력을 감소해 가야 한다. 상호 합의할 수 있다면 통합군을 창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외교와 국방이 남북 사이의 특수 관계적인 성격을 반영할 수 있다면 합일적인 체제로의 발전, 즉 통일이 가능하다.
넷째, 남북한 협의체로서 ‘민족회의’를 수립하는 방안이다. 기존의 남북 체제를 그대로 인정하면서 민족의 공동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남과 북이 각기 동수의 대표자를 선출해 공동 의회의 성격을 지닌 협의체인 민족회의를 구성한다.
이렇게 구성된 ‘민족회의’는 하나의 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최초의 의결 기구로서의 위치를 가질 수 있다. 여기에서 결의된 내용은 남북 당국에 의해 추인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환경, 문화, 체육 등 공통의 문제부터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조직체를 만들어 남북한의 대표들이 정례적으로 만나서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는 것은 민족통합을 위한 실제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국가연합이나 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통일로 가는 길에 특정한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거나 아니면 국가연합이나 연방제와 같은 특정의 형태로 통일이 이뤄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한 논의는 학자나 이론가들의 이론적 논리일 뿐이지 실제 현실에서의 통일과는 연관이 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필요한 것은 어느 일방이 다른 일방을 자기 체제로 수용하는 식의 통일의 발상에서 벗어나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민족의 공동 번영을 위해 힘을 모아 가는 과정일 것이다.
민족 통일의 대과업은 ‘연대적 공존체제’의 정립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연대적 공존체제’의 확립이야말로 민족 통합의 가장 효과적인 대 전략이라고 믿는다.
-특히 남북문제에 대해 더 하고픈 말이 있다면.
▲나는 북한의 인권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통분을 느낀다.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우리가 외면하거나 냉담하게 바라보기만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북한 당국을 설득해서 유효한 효과가 나올 수 있도록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고 본다.
북한의 핵 개발 문제에 있어서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대외적인 침략의 수단이기 보다는 자체적인 보위에 일차적인 목표가 있다는 데에 해결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핵으로 무장하지 않아도 북한의 존립이나 체제의 유지는 보장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시킬 필요가 있다. 상호 협상의 태두리 안에서 ‘핵을 대치할 수 있는 것’이나 ‘핵 포기에 상응할 수 있는 것’을 확보하게 해주는 것이 하나의 대응 전략일 수 있다.
북한을 정상적인 국가 체제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경제 발전도 하고, 사회적인 불안에서도 벗어나 국가다운 국가로서 우리와 정상적인 협력 관계를 이룩할 때 평화적인 민족통합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이영란 기자 joy@simin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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